당그니의 일본표류기


1.

  욘사마...작년에 일본을 강타한 키워드다.


  겨울연가는 NHK 지상파에서 마지막으로 방영되던 날(8/21),  20.6프로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전 텔레비젼 시청률 4위를 기록한 것이다. 동네 구멍가게 서점에도 '겨울연가'와 한국드라마관련 책자가 깔리고, 한류스타들의 사진집을 볼 수 있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욘사마와 겨울연가가 벌어들인 한일, 양국의 경제적인 수치는 논외로 하자. 이미 기사화 될 것은 충분히 된 상태다.  그래도 언젠가 '니혼테레비'(요미우리 계열 민영방송)에서 '욘사마와 한류열풍'에 대해서 다룬 프로가 있어서 봤는데 몇가지 재미난 것만 골라봤다.


  우선 한국어를 배우는 수강생이 6배나 늘었고, 한국남자와 결혼하고 싶다고 결혼 정보회사에 올린 여성이 올해초에는 2명이었으나 지금은 1700여명을 헤아린다고 한다. 게다가 영어 이외에 배우고 싶은 외국어 자리에 중국어를 제치고 한국어가 차지했고, 가고 싶은 곳은 하와이나 괌등을 제치고 '코리아'가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여자 사회자가 한복을 입고 나왔다는 것이다. 그건 나에게 분명 하나의 쇼크였다. 


 


  한복! 일본사람들은 그냥 '치마 저고리'로 부른다. 예전에도 한복은 일본에서 주로 총련계열의 민족학교 학생들이 입었는데, 우리민족의 자존심인 '한복'은 일본인에게 사냥의 대상이었다. 치마를 찢거나 놀리거나. 그런 한복이 이제는 일본인들이 입고 사진을 찍고 버젓이 방영이 되어도 전혀(?) 거부감이 없게 되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변화다.


 자기와 다른 문화를 인정하고 대접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인데, 이 대목에서는 일본인들의 야만성을 느끼게 해주고, 사실 한국도 자기보다 못사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게 대하는 태도가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상품의 이미지 효과는 대단한 힘이 있다는 것을 '겨울연가'가 웅변해준다.


 


2.


 나는 '겨울연가'가 확실히 히트한 이 지점에서, 다시 무엇을 생각해보아야 할까. 니혼테레비의 프로를 보니까 대략 일본사람들의 '겨울 연가'를 느끼는 지점에 대해서 파악을 하게 되었다. 일본인들에게 '겨울연가'란 새로운 문화라기 보다는 자신들이 '잊고 있었던 문화'라는 거. NHK에서 한글강좌를 진행했던 어떤 일본인은 '겨울연가'의 속성을 다음과 같이 정의 했다.


   


 "오싱 + 순정만화(소녀만화)"


 


오싱은 옛날 일본이 가난했던 시절, 방영된 신파드라마. 울고불고 짜고, 또 짜고..슬프고 서러운. 그런 신파극에, 순정, 순애보를 합쳤다는 이야기다. 즉 일본인들이 잊고 있었던 어떤 정서를 '겨울 연가'에서 찾았다는 것이지, 결코 새로운 문화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런 정서는 비단 그 사람의 평가만은 아니다.


 회사 사람들도 다 그런 언급을 했고, '닛케이 엔터테인먼트'(니혼 케이자이신문사가 발행하는 잡지)에서 인터뷰한 내용도 대부분 그런 식이다. 단 영상이 대단히 빼어나고, 음악이 효과적으로 극적분위기를 극대화시켰다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즉, 일본인들이 과거 가지고 있던 정서를 동어반복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일본인들의 입맛에 맞게 만들었다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테레비 프로는 그 후 '겨울연가' 이외에 추천할 만한 작품을 한류에 빠진 유명 연예인들의 소개를 통해 알려줬다. '아름다운 날들', '호텔리어'....등등. 그들은 물론 새로운 문화에 탐닉하는 즐거움을 얼굴에 담고 신나게 떠들어댔지만, 내가 보기에 그것은 일본에 들어와 있는 다양한 문화 중 하나를 맛깔스럽게 즐기고 있는 과정으로만 느껴졌다.


 


 어쨋거나 이 거대한 열풍으로 인해, 이제 일본 MTV에서도 자주 Korea Pop 최신곡이 흘러나오고, 이병헌도 버젓이 CM에 등장하는 시대가 되었다.


 


3.


  20년전 일본인 배우가 한복을 입고 나서 '살아 꿈틀거리는 조선의 맛, 장'이라며 불고기 양념광고를 찍은 적이 있다. 그것이 TV에 흐를때 내가 아는 한 재일교포는 그의 저서(사랑과 미움의 한국어)에서 '피가 멈춘 듯 했다'라고 표현했다.


 '조선'이라는 말이 TV를 통해 방영되면서, 아...조선인으로서도 괜찮다. 우리도 일본땅에서 살 수 있구나' 하는 어떤 해방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 광고를 찍은 일본배우는 그후 광고수입이 격감한 것은 물론, 그 딸도 학교에서 '죠센징'이라고 놀림을 받았다 한다. 그러자 그 배우는 아예 일본인인 자신의 딸에게 '그래, 아예 조선인이라고 해버려!!' 하며 엄포를 놓았다고 했다. 그런 짐승만도 못한 시간대를 역사의 사각지대에 놓인 '재일교포'들은 고통스럽게 통과해왔다. 그들의 기댈곳은 '조선사람만'의 조직밖에 없었지만, 그 울타리만 벗어나면 거침없이 사냥감이 되거나 자신들을 숨기며 살아야 했다.


 


 일본이 패전후 경제적 재건을 이룩하기 전 50년대. 일본인들조차 브라질이나 남미로 돈을 벌로 떠나던 시절, 돌아갈 고국의 땅조차 없고 기댈곳 없는 재일동포들은 토쿄 한구석 '에다가와'구 쓰레기장에서 쓸만한 것을 골라내서 그걸 겨우 모아 팔며 목숨을 연명했다. 그것도 좋은 자리는 일본인들에게 빼앗겼다.


 (이 에다가와 구의 조선인학교가 최근에 동경도의 폭거로 졸지에 헐리게 생겼죠. 최근 각 신문 기사에 보면 잘 나와있습니다.)


 


 그때 한 일본인 지인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자기가 살던 센다이에도 재일교포가 많이 살았는데, 아주 어린 나이에 같은 또래의 재일교포 여자애와 자주 놀았다고 한다. 일본인 집과 조선인 집이 마주보고 있던 동네.... 


 그는 늘 조선인 동네에 가서 스스럼없이 놀았는데,어린 시절 다른 일본애들이 왜 이쪽으로 놀러 오지 않는지 이해를 못했다고. 그런 어느날 그 조선여자애와 하루종일 그 집에서 놀고 돌아갈 채비를 하자 그 애의 어머니가 이런 말을 해줬다고 한다.


 


 "놀러와 줘서 고마워. 미키!'


 


 석양이 가난한 마을에 물들었던 50년대 어느날이었다. 일본인들은 어른은 물론이고 아이도 놀러오지 않던 그 시절. 아니 조선사람이라면 무조건 천시하던 그때....어머니는 자기 딸과 놀아준 일본인 '미키'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말은 어린 그녀의 가슴에 평생토록 남았다.


  물론 그 말을 듣던 나도 눈물이  핑 돌 정도 가슴이 아팠다. 어른들이 구획지어놓은 민족과 역사과 고통은 이렇게 아이들의 세계에도 고스란히 남겨진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한국과 일본이 월드컵도 같이 하고,일본이 한국의 문화에 유래없이 관심을 갖고 있던 이때 나는 문득 한국과 일본의 2000년간 주고 받은 아득한 역사를 생각한다.  


    


 


4.


  '일본과 한국은 단지 외국이다. 역사적으로 가끔 특별한 인연을 맺어왔을 뿐, 일본은 일본이다' 라는 말은 사실 거짓이다.


 


  일본은 고대 한반도에서 떠나던 유민들의 땅이자, 분국의 땅이었고, 조선시대까지는 특별한 외국이었다. 일본에게 한반도는 늘 선진국이었고, 일본이 갖은 전란과 동란에 휩싸였을때 넘쳐나는 교역에 대한 욕구와 굶주린 끝에 왜구가 되어서 쌀을 약탈하러 건너오던 땅이었다. 에도시대에 이르러서도 어떤 다이묘는 자기 조상이 조선에서 왔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떠벌이기까지 했다. 그 만큼 선진문물의 나라였다는 인식이 강했다는 뜻이다.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한 후 한 일은 전라도 지방에서 조직적으로 조선의 도자기공을 납치하는 것이었다. 이들의 후예가 만들어낸 도자기들은 훗날 일본의 주요한 대유럽 수출품이 되었고, 메이지 유신의 주역이 되었던 큐슈 번들의 주요한 재정적 기반이 되기도 했다.


 이렇게 일본의 근대화는 일정부분 조선에서 약탈한 문화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기도 한 것이다.


 (물론 모든 문화를 다 한국에서 전해줬다는 식의 접근은 좀 피하고 싶으나....원래 문화는 흐르는 법이므로)


 


 여전히 일본을 휩쓸고 있는 최대화두는 사실 한류보다 '경제회생'인데 그 중심에는 토요타가 있다. 그리고 그 토요타가 사실은 한국전쟁 직전에 거의 도산위기까지 가고 있었다는 것은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듯 하다.(물론 일본의 많은 기업이 전쟁특수를 탔지만) 토요타는 한국전쟁이 발발함으로써, 기사회생을 했고, 베트남 전쟁때 군수물자를 대며 날개를 달았다.


 


 흔한 말로 일본인들의 번영은 조선반도를 발판으로 약탈과 침략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그래서 일면의 진실을 포함하고 있다. 몰랐나...제국주의라는게, 선진국이라는게 원래 그렇고 그런 놈들이었다는 것을.


 


 


5.


 한때 일본인들에게 침략과 약탈의 땅이었던 한국. 내지와 외지로 구분된 식민지시대에는 '조선만 가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며 이주를 했고, 경제성장기에는 기생관광을 떠나던 땅.


 이제는 그들이 '겨울연가'의 욘사마와 최지우가 가슴아픈 사랑을 한 장소를 한곳 한곳 더듬으며 추억을 떠올리는 땅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한국이 자신들이 있고 있었던 '순정을 되새겨주는 추억의 땅'으로 새롭게 탈바꿈하는 이때, 그러나 또한 일본우익놈들이 재수 없는 역사교과서를 채택시키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이때, 나는 다시 되묻는다.


 


 우리에게 다시 일본이란 무엇인가.


 


 '일본은 잊지 말아야 할것을 잊고 있고, 한국은 잊어야할 것을 잊지 못한다'


 


 아사히 신문사에 다니는 일본인이 한 이 말은 양국간에 풀어야할 핵심 키워드가 뭔지를 암시해준다.


 


 


ps.저희회사 근처 록뽕기에 드뎌 권상우의 '말죽거리 잔혹사'가 포스터로 떴더군요. 한류열풍은 일본에서 이제 겨울연가를 넘어 전방위로 확산되는 양상입니다.


아래 포스터, 05/7/15일 개봉. <천국의 계단> 권상우 주연, 이런 문구가 붙어있습니다.


근데, 권상우가 끝에 일본어로 이렇게 한마디 해줘도 좋겠네요.


 


"새로운 역사 교과서 X까라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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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당그니
일본! 이것이 다르다! l 2005.07.13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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