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그니의 일본표류기


1. 봉오도리 대회.

매년 여름철이면, 일본 마을 곳곳에서는 '봉오도리 대회'가 열린다.

'봉오도리' 대회란 뭐냐.

무슨 닭새끼 이름 같기도 하고 그렇지만, 우리나라로 치면 추석 달맞이 같이, '양력추석 춤추기' 대회이다.
이곳에서 '양력추석'은 '오봉'이라고 해서, 다들 고향에 내려가서 성묘를 하거나,가족과 함께 지낸다. '오도리'란 춤추기 란 뜻이므로, 합치면 '추석날 달맞이 춤대회' 뭐 이 정도 되겠다.
(나는 이번 오봉에 고향에 가기는 커녕, 아주 특별한 노가다를 했음 ㅎㅎ.)


따라서, 이 '오봉'이 가까워오면 동네 곳곳에서 춤판이 벌어지는 것이다.
물론 그냥 춤판이 대책없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선 행사를 하기 전에 무대가 마련되고, 그 무대 중앙에 탑이 마련된다. 그 탑 위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면서 악기를 연주하는 건지 테잎을 트는 건지 모르겠으나 암턴 정 중앙을 차지한다. 그리고 그 탑을 중심으로, 탑돌이를 하듯이 춤을 춘다.

그러나, 이 춤판이 그럴 싸한 남녀가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그늘 사이에서 끈적한 미소를 주고 받고 벌이는 광란의 춤판 같다면 그야말로 좋겠으나, 그런 음습한 섹씨함은 온데간데 없고, 주로 동네 자치회에 소속되어 있는 나이 지긋한 아지매(?) - 사실 거의 할머니에 가까움 ㅜ.ㅜ-들이 좀 간편한 기노모(유타카)를 입고 나와서 원을 그려가면서 춤을 추는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서 사람들은 어정쩡하게 전통춤을 흉내내며, 보통 사람들은 멀찌감치 앉아서 맥주를 들고와서 마시거나, 담소를 즐긴다.


2.
일본에는 가까운 동네에 공원이 많다. 주말에 보통 아이들은 이곳에서 캐치볼을 하거나, 가족끼지 던지기 놀이를 하거나, 아니면 애완견을 산보시킨다. 보통 내가 출근할때는 비둘기들이 닭처럼 모여 앉아서 잠을 퍼자고 있는 장소이기도 한데, 이 습기가 많은 일본에서 저렇게 많은 깃털을 갖고도 졸고 있는 것을 보면 정말 비둘기가 멍청한건지 뛰어난 인내력을 가진건지 모를 일이다.

신기한 것은 이런 일상의 공간이 봄, 하나미(꽃놀이) 계절이 되면, 사람들에게 화려한 벚꽃그늘을 드리우고, 여름이 되면 불꽃놀이를 쏘아올릴 수 있는 밤하늘을 내려준다. 그리고 이렇게 봉오도리 대회가 열리는 공동체의 중심이기도 한 것이다. 일상과 축제의 조화는 이렇게 가까운 공원에서 만나는 것이다.

사실, 이 봉오도리 대회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해도, 춤바람이 아니라, 그 뒤로 늘어서 '포장마차'에 있다. 일본어로 '야타이'라고 하는데, 이미 대회를 시작하기 전에 하루전부터 늘어서기 시작한다.

원래 제사보다 젯밥에 사람들이 관심이 있듯, 춤대회는 배경음악이고 다들 이 포장마차가 늘어선 거리에서 '빙수'며, '오징어구이'며, '사격' 등등 놀거리를 즐기는 게 우선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손을 잡고 와서 열심히 금붕어 잡기를 하거나, 솜사탕을 사먹는 것이다. 어른들은 물론 맥주를 사들고 와서 저쪽에서 춤을 추거나 말거나 술을 마시며 일상의 피로를 풀면 되는 것이다.

올 여름도 '봉오도리 대회'는 여지없이 내가 사는 아파트 10층까지 확성기를 타고 퍼져나오는 일본 전통음악과 함께 다가왔다.
그리고 여기, 만 두살밖에 안 되었으나 춤바람하면 알아주는 채현양과 함께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곳으로 떠나야 했다.!!

(사실 채현이가 출줄 아는 춤은 그냥 사람들틈에 끼어서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것이다^^. 또 나는 그런 채현이가 없어질까봐 또 정신없이 따라다니다 끝난다. ㅜ.ㅜ)


3.

채현이를 따라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안에 열린 '대회'를 가보니, 역시 붉은 백열등이 촘촘이 늘어선 포장마차가 분위기를 한컷 돋구고 있었다.

그때, 나는 어렴풋이 생각했다. 나에게도 이런 축제의 공간이 있었던가. 내가 자라고, 학교를 다니고, 대학을 마칠때까지, 그리고 회사원이 되었을때까지 가깝게 이런 소란스럽고 잡스럽지만 그리 싫지만은 않은 축제의 공간이 있었던가. 열심히 떠올려보았으니, 별 소득이 없었다.

굳이 비슷한 이미지를 떠올려 보니, 대학시절 집회에서 한참 열심히 투쟁가를 따라부르다 배가 고프면 후배들과 자리를 빠져나와 김밥 사먹던 포장마차가 생각났다. 하긴 그 포장마차에는 다양한 오뎅과 갖가지 색깔의 김밥재료가 있었으니,그것도 축제는 축제였고,늘 굶주림 그 시절에 김밥 한줄은 솜사탕보다 더 달고 맜있었다. 게다가 더욱 웃긴 것은 아무리 집회가 원천봉쇄가 되어도 김밥 포장마차는 그 전경버스와 최루탄을 뚫고 집회장안으로 들어온다는 것이다.

역시 먹고 산다는 것은 위대한 일임을 나는 포장마차를 보며 깨달았는데......

사실 일본에서 이런 축제의 장에 들어오는 포장마차도 동네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전문적으로 전국을 떠도는 사람들이라 한다.

그러나, 일본전통음악이 시끄럽게 귓가에 맴돌때 나를 아득한 사색의 숲으로 데리고 간 것은 초등학교 시절의 추석이었다.


4.
아이들에게 추석은 제사라기 보다, 새 옷과 역시 부침개다.

아버지는 우리 삼형제를 데리고 동대문에 아마 가신 거 같고, 그때 그 시장에는 정말 생전 처음보는 물건이 상점 그득 그득 쌓여있었으나, 결국 우리가 고른 운동화는 이른바 '짜가'였다. 그러니까 '아식스'가 아니라 '슈퍼 아식스'를 '프로 스펙스'가 아니라 '프로 스포츠'를 샀다. 형은 아마 아디다스보다 하나 더 많은 줄이 다섯개 들어가있는 '어디뒷수(?)'를 샀던 걸로 기억된다.

그리고 입어보면 바지는 내 발가락 끝 발톱까지도 덥고 남아서, 내가 한해에 10센치씩 큰다 해도 두해는 더 입을 수 있는 걸로 골라졌는데, 내가 가진 선택권은 바지의 길이가 아니라 바지의 색깔이었다. 어쨋거나 아버지와 우리 삼형제는 그 물건 많은 시장 순례를 마치고, 새 신발과 새 바지와 새 옷을 갖게 되었다.

아직 나는 그때 중학생이 아니어서 이 '짜가'에 대한 강한 열등감과 혐오감은 아직 없었고 그저 새 추석빔이 생겼다는 것만으로, 또 어머니 제사를 위해 부치시는 부침개 냄새만으로도 추석 당일날이 무척이나 기다려졌다.

그런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역시, 추석 당일날이다. 우리 형제는 미리 화약이 담긴 권총 장난감을 사놓고, 새 옷도 곱게 개어 놓는다. 그리고 신발도 몇번이고 다시 닦아서 출정을 기다리는 병사의 군화처럼 가지런히 방문앞에 모아두는 것이다.

제사가 막상 끝나면, 우리는 새로 갈아입은 추석빔 차림을 하고, 동네 골목을 그 화약이 든 장난감 총을 들고 어슬렁 거리는 것이다. 물론 적은 있을리가 없고, 잘못해서 총소리를 다연발로 냈다가는 윗층에서 물벼락이 떨어질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어슬렁 거리다가 진짜 축제의 클라이막스는 동네 친구가 나타났을때 그 총을 빼어들고 '빵! 빵!' 화약이 터지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화약 총은 비비탄처럼 뭐가 나가지는 않으나, 그래도 '탕, 탕' 울릴때 뭔가 쏘았다는 느낌을 주게 한다. 그리고 역시 놀 상대가 아무도 없다는 걸을 깨달은 우리는 집으로 들어와서 다 식어버린 부침개며, 벌써 몇번째 보는 것인지 모르는 만화영화 재방송을 보다가 딱딱한 옷을 입은채 잠드는 것이다.

젠장. 추석의 클라이막스가 기껏 화약총 몇방 허공에 날려보내는 것이라니....

(우리집이 큰집이어서, 다들 고향으로 떠난 서울은 이렇게 썰렁했었다 ㅜ.ㅜ)



5.
채현이가 늘어선 '야타이' 앞에서 떠날줄 모르고 있던 곳은 '금붕어 뜨기'였다. 이건 100엔을 주면 금붕어를 뜨는 '채'를 주는데 이게 워낙 약해서 붕어를 조심히 뜨지 않는한 그냥 찢어져 버린다. 두번인가 해봤는데, 역시 지롤(?)하는 금붕어는 번번히 채의 망을 찢고 빠져나갔다.

채현이는 아마 무언가 살아움직인다는게 신기했을 것이다. (이런 아이들이 또 약장수들의 밥이죠^^)

그렇게 실패하면, 한마리는 그냥 덤으로 주는데, 어차피 집에 키울 곳도 없고 해서 받지 않았다. 게다가 그런 금붕어는 원래 좀 약하고 조금은 병들어 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채현이를 겨우 달래서 앞으로 나가자 이번에는 가면들이 들어서 있는 '야타이'가 나타났다. 하나에 300엔이나 받는 다양한 가면들이 줄줄이 매달려 있다. '호빵맨', '배트맨', '가면라이더' 등등.....채현이가 그걸 노칠리가 없으나, 나는 안면몰수하고 채현이를 안고 날랐다 ㅎㅎㅎ. 그리고 본판이 벌어지는 무대 앞까지 단숨에 왔다.

역시 아이들을 데리고 물건 많은데 올데가 못된다, 생각하면서......

그날 밤 9시가 넘도록 춤은 계속 되었고, 아줌마와 할머니와 젊은 이들이 흘러나오는 음악과 함께 빙글빙글 돌아가며 춤을 추었다. 한번은 아이들만 무대에 올라가는 시간이 있었는데 채현이가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올라가서 아예 춤을 추는게 아니라 뛰어다니다가, 시간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내려오지 않고 있다가 강제로 나에게 연행되는 사태까지 발생하기도 했다.

지루한 일상이 있음으로 인해, 이런 특별한 축제도 더욱 의미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분주한 옷차림과 차까지 타고 가야할 만큼 떨어진 곳에 있다면 그것은 또하나의 고행이므로, 나는 이런 동네축제의 자리가 너무나 좋다. 그냥 슬리퍼 차림으로, 저녁 먹고 나른해지는 일요일 저녁, 몇걸음만 옮기면 이렇게 가깝게 전통문화와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좋다. 그것이 또 내가 살아온 축제의 기억까지 불러일으켜주니..얼씨구니 취하는 구나....

올해 여름도 그렇게 깊어만 간다.

물론 일본에서도 이런 춤판이 벌어지기 위해서는 자치회에서 자발적으로 모여서 연습을 꽤 해야하고, 요즘 일본 젊은이들은 그런 조직에 참여하지 않는게 큰 문제라 한다....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달맞이 행사가, 텔레비젼에서만이 아니라 강상수월래.....손을 잡고 한산도 앞바다를 밝혔던 그 대동단결의 춤판으로 모아지기를 바래는 것은 욕심일까.


'언니 오빠...오늘 나와 한판 땡겨보지 그래? 홍대 클럽 같은 끈적거리는 곳 말고, 요기 동네 놀이터에서 말이지!! 왜 동네에서 땡기면 좀 추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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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당그니
일본! 이것이 다르다! l 2005.07.2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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