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그니의 일본표류기


1.

 요즘은 가끔 꿈에서도 지진이 난다. 중증이다. 꿈은 일상의 재현인가.  


 초등학교 시절엔 북한공산군(?)-똘이장군에 나오는 붉은 승냥이 ㅎㅎ-이 우리집에 쳐들어와서 총을 맞는 꿈을 꾸었다. 이승복 어린이 사건을 하도 진지하게 받아들였거나, 아니면 6.25만 되면 방영되는 반공영화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이쯤되면 그 당시 어린 소년이었던 나에게 교육현장은 전쟁공포로 가득찬 반공의 선전장에 다름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대학시절엔 반대로 전경에게 쫒기는 꿈을 자주 꿨다. 그것도 졸업하고 한참이 지나서도 나는 대책없이 쫒기거나, 잡히는 꿈을 꿨는데, 요즘에는 다행히 안 나온다. ㅎㅎ. 대신 지진이라니.....차라리 잡히는게 낫겠다. ㅡ.ㅡ






2.


 한국사람인 나도 일본에 와서 처음 지진이 났을때,그게 지진인줄도 몰랐다. 그때 어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난 지하에서 발파공사를 하는 줄 알았다.


 '아니 멀쩡한 낮에 왜 지하에서 공사를 하지'


 사실 그 학교가 구릉지대에 있어서, 지하 공사를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곳이기도 했다. 좀 지나니까 도서관 직원이 돌아다니면서 괜찮으니까 계속 공부하시라고, 이야기 했을때 그제서야 지진인 줄 알았다.


 그 후 지진은 나에게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 교또에서도 자다가 흔들,흔들....도꾜에 와서도, 컴퓨터 작업을 하다가, 회사에서 일하다가 흔들,흔들....이젠 뭐 그냥 그러려니 한다.


 참고로, 지진의 느낌을 글로 좀 옮겨본다면, 목조건물 1층에 살때는 땅밑으로 '거대한 두더지'가 지나기는 느낌이 들었다.(내가 생각해도 약간 만화적인 상상력인디...) 지금 살고 있는 콘크리트 건물(11층)에서는 어쩔때는 어 거대한 건물이 으드득, 으드득 몸을 푸는 거 같기도 하다.


 무엇보다 가장 황당한 것은, 한국에 있을때 지면은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당연한 경험이 이곳에 와서는 우리가 발딛고 있는 땅은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다는 상식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3.


 이제 일상의 일부가 된 지진은 그래서 그냥 비나 태풍이 오듯이 조금 흔들리고 말면 무덤덤하게 버티는 내성도 생겼다. 한국에서 전쟁의 위험속에서 늘 울리던 민방위 사이렌소리가 그냥 일상화된 풍경이 된것처럼, 일본도 지진은 그냥 가끔 찾아오는 불청객 같은 것이다.


 


 최근에 지진이 약간 더 공포로 다가오게 된것이, 니이가타 지진이다. 이번 지진은 내가 일본에 온 이후로 처음 겪은 대규모 피해를 겪은 지진이기 때문이다. 물론 도꾜지역도 며칠전 큰 지진이 오긴 했지만 그리 큰 피해가 없었다....인터넷을 보니 이제 화산 터지는 일만 남았을듯....이라는 댓글을 붙을 걸 보고, 아예 작정하고 웃고 말았다. 그래 화산이라도 터져라. 불꽃놀이나 하게...ㅎㅎㅎ. 후지산이여 과거의 영광을 다시 한번!!


   아닌게 아니라 토꾜 인근해역의 미야케지마 라는 섬이 있는데, 그곳은 지난 2000년인가 화산이 폭발을 해서, 집들이 화산재로 뒤덮이고,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섬을 빠져나온 일이 있었다. 가끔 통학길에 신쥬쿠에서 지원모금 운동도 펼쳐지곤 했다.


 


 처는 이번일을 계기로 '가스버너'를 사두고, 욕조에 물도 받아두었다. 만약에 단수,단전,가스공급 중단이 되면, 물이라도 끓여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가 있는 집안은 피난이나 이런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


 


 


 


4.


 실제로 지진이 나면, 반 이상이 화재로 인한 피해다. 진도 7 이상이 되면 집이 무너지거나, 다리가 끊어지거나, 도로가 가라앉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가스관등이 파열되거나, 전기선 합선되는 등으로 화재가 연쇄적으로 발생한다. 또한 지진으로 인해 문이 휘거나 창문이 휘어서, 미쳐 집을 빠져나올 수 없는 경우 화재가 발생하면 볼일 다 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은 연립주택은 베란다에 샷시가 없고, 옆집 베란다와도 얇은 칸막이만 쳐져 있을뿐 근본적으로 벽으로 나뉘어져 있지 않다. 유사시에는 발로 차면 부서질 정도의 칸막이로 되어 있는데 이것도 다 지진이 일어났을 때 피난을 위한 것이다.


(이것 때문에 창문 하나로 겨울을 나야하니, 더 추운것도 있음 ㅜ.ㅜ, 내 옆자리 녀석은 베란다에 나눈 거북이 옆집 베란다로 도망갔다나, 어쨌다나…)


 


 어쨋든 지진에 대비하는 최선의 대책은 비상용품(손전등,라디오)을 꾸리고, 손으로 조작이 가능한 미니 소화기를 준비해두는 것 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지진이라는 놈이 예고를 하고 오는게 아니라는 데서 머리를 싸매게 된다. 집에 있는 동안 지진이 온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나. 전철안에서, 혹은 회사에서, 길가다가....등등 경우의 수는 엄청나게 많다. 즉 인간의 예측을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95년 코베대지진의 발생한 이후 지진관련 용품이 엄청나게 팔렸는데, 그 뒤 한참동안 지진이 안나서 당시에 사두었던 용품은 다들 버렸다고 한다. 자연은 이처럼 인간의 욕망과 별개로 제 할일을 한다. 따라서 일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지진에 대한 대책은 그냥 '카미사마(신)'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해줄 것이므로, 그냥 그러려니 무시하고 사는 것이다.






5.


 사실 이번에 본격적인 지진의 두려움에 사로잡힌 내가 다시 태연한 일상으로 돌아오게 된것은 어떻게 보면 사소한 한마디를 듣고 나서이다. 일본인들의 꿈은 한국사람과 마찬가지로 집을 사는 것인데, 한 35년이상 론을 끼고, 월세대신 갚아나가면서 대출받아서 사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처가 회사에서 자기 일본인 동료가 집을 산다고 하자,


 론을 한참이나 갚아나가고 있을때 지진이라도 나서, 무너진다면? 하고 물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일본인 동료의 대답이 걸작이다.




 '그런거 생각하면 아무것도 못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거 두려워해서 무슨 일을 하겠는가. 꼭 사람이 죽는다면, 지진 뿐 아니라도, 교통사고며, 갑자기 걸리는 무수한 병이며, 얼마나 많은데, 지진으로만 꼭 죽는다는, 혹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이 갑자기 망한다는 보장이 있나. 이번 지진도 일본에서 지진이 나지 않는다고 예상했던 지역에서 일어났고, 코베 대지진도 플레이트가 충돌하는 지점은 아니었다.  




 일본인들이 태연한건, 언제 올지 모를 지진에 떨고 있기 보다, 하나의 숙명처럼 그것을 받아들이고 주어진 일상을 열심히 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나면, 어떤 대비체계를 갖출 것인가를 준비하는 것일뿐이다. 그런의미에서 일본인들은 무색무취의 종교관처럼 지극히 현실적이다. 나는 최근에 회사의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어떻게 다들 이렇게 약속이나 한듯이 멀쩡할 수가 있지? 하고 생각할 정도 였다.


 그리고, 한국사람들이 바라듯이 일본이 가라앉거나, 지진으로 모든 공장이 무너져도,그들은 이곳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한반도에서 설령 전쟁이 일어나도 그곳을 사랑하는 사람은 절대 그 땅을 떠나지 않을 것이듯이.


 위에서 화산폭발로 피난했던 미야케지마의 사람들도 이제 복구가 완료되어 다시 그 섬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언제 다시 화산이 폭발할지 모르지만, 그들은 그땅을 버리고 육지(?)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땅으로 돌아가고 있다. 땅과 인간의 관계는 그런 것이다.  




 오히려 지진이나 태풍이 더 많이 와서 일본이 망하기만을 바라는 한국사람들의 빈곤한 상상력이 한심할 뿐이다. 일본사람들이 지진이나 화산, 자연재해가 무서웠다면, 에도시대 이후에도, 혹은 근대에 들어서도 자기네 땅에 공장을 짓고 첨단시설을 만들었을 리가 없다. 관동대지진이 수도를 휩쓸었어도, 그들은 다시 이곳에다 삶의 터를 건설해냈다. 지진은 하나의 변수로, 인간의 영역이 아닌 것으로 두고, 태연한 일상을 재건한 것이다.


 지금도 일본에서 지진이 나니까 다른 지역으로 공장을 안전하게 옮기자는 둥 하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좀더 지진에 대해 인간의 이성의 손길이 닿는 곳까지 최선을 다해 예측해보려는 시도가 활발해지고 있다.


(물론 지진덕에 한국의 반도체산업이 덕을 본 점을 아주 부정하는 것은 아니나, 그건 한국의 집중적 투자와도 관련이 있으니, 논외로 치자)




 내가 이번 지진을 겪으면서 깨달은 것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오만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 그리고 공기와도 같이 무난한 나의 소박한 일상은 또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특히 니이가타지진 당시 대피소에서 추위에 떨면서 생활하는 피해지역 사람들이 가졌던 제일의 바램은 집에 돌아가서 따듯한 미소(된장)국물을 끓여먹는거라고 하는 것을 보면 일상의 안정은 그 자체가 행복이 다.


  좀 더 이런 일들을 겪을 수 록 우리는 자신들을 둘러싼 모든 자연에 대해 겸손해야 하지 않을까.






6.


얼마전 일본사람을 만나서, 물었다.




'이번 니이가타 지진 이후, 앞으로 더 큰게 동경 쪽에 온다는데요?'


'ㅎㅎㅎ. 아 그 이야기 제가 초등학교때부터 있었어요. 30년전부터 들었던 이야기인데...'




그 예언 정말 오래도 가네!!!^^. 오던지 말던지 맘대로 하슈!!




                                                                                      (2004/11/19 쓰고, 05/7/27 수정함)








ps1. 웃긴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사람들도 지진보험 가입율이 겨우 10프로라네요. ㅎㅎㅎ. 암튼 세상 어디나 똑같다니까요. 당장 돈이 아깝지 언제올지 모를 미래에 투자하기 보다...




ps2. 작년말에 써둔 것입니다. 동경지진을 겪고나니, 니이가타지진이 새삼 남 이야기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약간 수정하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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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사진: 전형적인 일본의 개인주택(집근처), 대부분 목조로 지어진다.


              보통 주차장을 반드시 갖춰야 되는 일본주택은 대부분 1층을 주차용으로


              비워두거나 파먹듯이 집을 만든다. 따라서 때에 따라서는 1층이 아주 가는 기둥으로


              만 버티는 경우가 있어서, 지진시 무너질 위험도 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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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당그니
일본! 이것이 다르다! l 2005.07.27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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