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그니의 일본표류기


1.

 채현이가 점점 커간다. 앞으로 두살만 더 지나면 딱 그때 명균이 나이가 될 것이다.

 2.
 벌써 3시간째 배가 지나가면서 갈라내는 바닷물의 포말을 보고 있는 중이다. 봐도 봐도 지치지 않는 풍경. 바람이 시원했다. 새벽 고속버스를 타고 광주를 거쳐, 해남을 지나 완도에서 내렸다. 대한민국 육지의 끝에서 페리로 갈아타고 이곳으로 향했다.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간밤에 비가 내렸는지 멀리 구름에 휩싸인 섬이 보였다. 제주도였다. 막내삼촌이 살고 있던 곳.
 내 나이 스무살. 무전여행을 할 자신은 없고, 유럽배낭여행을 할 돈은 없는 내게 막내삼촌이 사는 제주도는 혼자 여행하기에는 딱인 곳이었다. 뭍에 내려서 전화를 하자, 작은어머님께서 차를 몰고 마중을 나와주셨다. 보름간의 여행의 시작이었다.






  이수동 / 나들이


3.

 "너 2년전 아빠하고 갔다가 업혀서 왔잖니. 이러면 형아 힘들어"

 제주도 여행 그 첫번째로 한라산 백록담을 갈 예정인 아침. 나보다 먼저 사촌동생인 명균이가 모자까지 쓰고 현관앞에 서 있었다. 6살.

 "괜찮아요. 가고 싶어하는 거 같은데, 제가 데리고 갈께요"

 아이를 귀여워했던 나는 흔쾌히 데리고 가겠다고 했다. (지금이라면 죽어도 안데리고 간다고 했을 것이다. 미쳤지. 무엇보다 그땐 스무살이었다.)

 "아니..힘들텐데.."

"형아하고 갈꺼야. 한라산" 명균이는 단호했다.

 결국 명균이는 승용차에 동승했다.

4.

 작은어머님은 나를 한라산 등반로 입구까지 차로 데려다주셨다.
 아침부터 정성스레 싸주신 김밥을 건네주시며,
 "몸 성히 잘 구경하고 다녀와. 명균이가 좀 걱정되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 '몸성히'라는 말에 담긴 아이와 함께 하는 산행이 어떤것인지 감을 못채고 있었다. 용감하다 당그니.(애 키우다보면 산행은 고사하고, 외출도 그렇게 피곤할 수가 없다)

  차에서 내리자 마자, 명균이는 손살같이 뛰어갔다. 6살짜리 치곤 나보다 더 빨리 오르는 듯 했다. 나는 한라산에서 까마귀를 처음보았고, 머리위엔 정말 티없이 맑은 여름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4.3항쟁 관련 역사서가 가방안에 있었지만 채 읽지 않은 때라서 비감한 정서같은 것은 없었다.

 드디어 산장 도착.
 여기서 점심을 먹어야한다. 이곳말고는 이제 쉴데가 없으므로.
 김밥을 펼치고 밥을 먹을 적당한 장소를 찾으려니 역시 그늘이 필요했다. 숲이 있는 쪽으로 가자 거기엔 이미 자리를 펼치고 식사를 하시는 노부부가 있었다.

 노부부는 명균이을 귀여워해서, 명균이를 불러서 이것저것 과자도 주시곤 했다. 나는 주섬주섬 김밥을 입안에 몰아넣고, 대충 때운다음 다시 명균이를 불러,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5.
 "형 엄마가 차로 여기까지 오셨으면 좋겠다"

 "뭐?"

 드디어 상황 발생. 명균이가 다리가 아파서 못걷겠다는 거다.  

 "야. 작은엄마 차가 장갑차도 아니고 이 산중을 어떻게 와"

 "온다니까..."

 그러더니 드러누워버렸다. 이쯤되면 '대략 난감' 정도가 아니다. 미치고 팔짝뛰고, 환장할 만한 상황이다. 결국 배낭을 앞에 메고, 명균이를 업었다. 한 20분 가니까 쓰러질 정도가 되었는데, 명균이가 또다른 상황을 연출했다.

 "형아 똥 마려"

 "또..똥?"

 "응".

 "음....."


 이번에는 대략난감. 나는 등산로를 우회해서 명균이가 볼일을 볼 장소를 찾았고, 재빨리 일을 해치웠다. 이거 애 아빠도 아닌데 뭐하는 걸까.

 6.

 다행히 그 이후로는 평평하고 지루한 길이 이어져서 명균이를 업지 않아도 되었다. 멀리 한라산 정상이 보여서, 금방이라도 올라갈 수 있을것 같았지만, 한참을 걸어가야했다. 눈에 보인다고 가까운 것은 아니니까. 급기야 정상에 기어오르기 시작. 경사가 거의 35도 이상은 되 가는것 같았다. 이제는 명균이는 제쳐두고, 나부터도 헥헥되면서 정신이 혼미(?)지기 시작했다. 명균이를 끌고 뒤죽박죽 등산인지 포복인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올라갔다. 운이 좋았는지 정상에 오르는 중턱쯤 되자 군인 한명이 명균을 업고 올라가 줬다. 그 옆에 아주머니가 한마디 했다.

 "저 양반은 자기 몸도 못챙기면서 애는 왜 델꼬와"  

 드디어 백록담 도착. 백록담은 초등학교 5학년 지리교과서에 있던 사진과 다르게 물이 거의 쪼그라 들어서 분화구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6살짜리 아이가 한라산 정상에 올라왔다는게 믿겨지지 않는다는 듯이

 "와 꼬마야....너 혼자 여기 올라왔어?"

 "응" 명균이는 명쾌하게 대답했다. -_-;;

 그래, 니 의지로 여기까지 올라온거니 혼자온 거랑 진배없다. 나는 두손 들었다.


 7.

  정상. 발아래 놓인 세상이 까마득하고 보이는 곳. 아래로부터 구름이 꾸역꾸역 기어오르고, 햇살이 반짝였다. 우수수 오름 사이를 휘젓고 다니던 바람은 정상까지 몰려와서 그 기운을 풀었다. 시원했다. 문득 눈을 돌려보니, 아까 산장 옆 그늘에서 식사를 하고 계시던 노부부가 또 자리를 펴놓고 무언가를 드시고 계셨다.

  '아니 저 할아버지네는 정상까지 오셔서도 음식을 드시네'

  그런데 또 명균이를 보시더니 과자를 조금 싸주셨다. 물론 명균이는 냉큼 그걸 받아왔고, 나는 감사하다고 간단히 형식상 목례를 했다.

어렸을때도 부모님과 어딘가 놀러가면 늘 고기를 구워먹곤 했는데, 나는 그게 싫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경치를 즐기는게 아니라 맨 먹으러 다닌다고 생각했다. 스무살의 나에겐 그게 너무 구질구질해보였다.

  어쨌든, 대한민국 최남단 섬의 정상에 올라오자, 긴 입시의 굴레에 짓눌렸던 무게과 절묘하게 대비면서 더할 나위 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참고서만 가득했던 방구석과 교실로만 고정되어 있던 세계가 그래도 이 만큼이나 확장된 셈이었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서둘러 내려가지 않으면 명균이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잠깐의 해방감을 뒤로 하고, 휘적휘적 명균이를 데리고 정신없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8.
 솔직히 그 뒤는 언급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고투였다. 주체하지 못하고 풀려버린 다리의 균형을 잡는 것은 둘째치고, 내려오는 길도 끝이 없었다. 게다가 명균이가 또 한번 변을 본다고 해서 등산로에서 다시 한번 우회해서 일을 보게 했는데, 내뒤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이 내가 온 쪽이 하산길인 줄 알고 우르르 들이닥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_-;;

 "저..저기요 여..여기는 등산로가 아닙니다. 아까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셔야 해요!!!"

 한 30명쯤 명균이의 엉덩이를 보았을 것이다.


 하루가 끝났다. 길고 지루했던 등산로. 말라버린 백록담과 두번의 명균이 사태(?), 그리고 어딜 가든 먹는 것을 빼놓지 않고 즐기는 한국사람들의 식성에 질렸던 터라, 첫 제주여행지인 한라산은 나에게 악마의 산(?)이 되고 말았다.

9.

  내 한라산행이 끝나고, 보름간의 여행도 끝났다. 돌아오는 길은 부산에 있는 큰 삼촌댁을 들렀고, 제주발 부산행 페리호는 12시간이나 걸렸는데,객실이 지독한 냄새가 났던 기억밖에 없다. 큰 삼촌댁에서 며칠을 묵고, 다시 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이로서 스무살 첫 여행도 끝났다. 대단한 건 없었다. 원래 사람들이 거창하게 추켜세우는 나이때일수록 막상 살아보면 아무것도 없는게 태반이니....

 여행의 피크가 원래 출발할때의 그 싱숭생숭한 마음이라면, 내 여행의 피크는 완도발 제주행 페리에서 바닷물의 포말과 함께 이미 절정을 지나고 있던 셈이었다.

10.

 3개월후 추석이 되었고, 명균이네가 본가인 서울로 올라왔다.

 그런데, 작은어머님이 작은 엽서하나를 나에게 내밀었다. 거기엔 의의의 메세지가 담겨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한라산에서 명균이를 만난 노부부입니다. 우리 부부는 환갑을 맞이해서 기념여행을 떠난 길이었죠. 중간에 몇번이고 포기할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산장까지는 올라갔습니다만, 더 이상 너무 힘들어서 포기를 하려고 할때 명균이를 보았습니다. 그때 저의 처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더군요.    

 [여보, 저기 저 아이도 저렇게 씩씩하게 산을 오르는데, 우리도 여기도 포기할 순 없잖아요]

 저희는 명균이를 보고 다시 용기를 내어서, 한라산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물론 거기서도 다시 명균이를 보게 되어서 기뻤습니다. 그때 명균이 목에 걸려있는 이름표를 보고 집주소를 알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저희의 환갑산행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습니다. 이 엽서와 함께 간단한 선물로 그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명균이는 지금도 씩씩하지요?'  


 나는 그제서야 한라산에 있었던 그 두분의 식사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만찬이었음을 깨달았다.


* 그 명균이가 벌써 고3이라고 한다. 어찌보면 한국사회에서 가장 엄혹한 시기(?)를 보내는 그에게 힘내라는 말을 보내고 싶다.



Posted by 당그니
인생의 갈림길에서/길에서 만난 연인들 l 2005/09/25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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