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태왕사신기가 일본에서 흥행가능성이 있다는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태왕사신기 일본 흥행 가능성이 있나?
지루한 고구려내의 권력쟁탈전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고구려밖에서 싸움이 벌어지면서 담덕의 활약이 두드러졌기 때문이었다. 또한 백제관미성 성주인 처로의 등장으로 신선함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회가 거듭할수록 여전히 태왕사신기는 다시 고구려내의 권력투쟁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것도 지리멸렬하게. 기하의 분노에는 독기가 제대로 서려있지 않고, 카리스마를 뿜어내던 처로는 뜬금없이 수지니를 따라나서 국내성으로 간다. 삼각관계를 만들겠다는 것일까.
담덕이 주장하는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 전쟁'이 없다는 대의는 존중하나, 그것을 느끼는 백성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한나라의 군대가 움직이는 웅대함이나 치열한 전투는 볼 수가 없다. 그냥 쥬신의 왕으로서 담덕의 손길이 미치는 곳은 별다른 갈등없이 문제가 해결되는 맥빠진 이야기만 반복된다는 느낌이다.
모든 일이 담덕이 예견한대로 이루어지고 다른 장치는 담덕이 그것을 뛰넘기 위한 장애물일 뿐이다. 물론 이야기 전개상 담덕이 성장하는데 필요한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 갈등에는 치열한 인간적 고뇌나 당대의 중첩된 모순관계가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신물을 둘러싼 암투만 되풀이된다는 게 문제다.
계속 보고 있자니 담덕이나 수지니가 말타고 돌아다니는 것 말고는 어떤 감정적 카타르시스도 오지 않고 있다. 백호를 찾아나선 호개의 군대도 100명 남짓되는 군대로 위치를 알 수 없는 거란족을 치는 모습을 보면 비주얼로도 썩 만족스러운 것도 아니다. 썰렁한 군대 숫자와 텅빈 화면?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라는 것을 빼고 처음부터 판타지를 지향했으면 아마 문제를 덜 느꼈을 것 같다. 시청자들은 아마도 광개토대왕이 언제쯤이면 고구려 내를 통일하고 힘있는 제국을 건설할 것인지 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어차피 드라마의 방향성이 이런 쪽이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남아있는 방영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음에 비해 이야기의 짜임새는 너무 늘어진다.
오히려 이산이 비주얼은 태왕사신기보다 떨어질 지언정 더 긴장감이 있고 재미가 있다. 1회를 본후 안보다가 최근에 14,15회를 봤는데도 말이다.
이산에는 영조의 카리스마가 철철 뭍어 나오고 정조를 둘러싼 정치적 암투와 계략, 그리고 그것을 헤쳐나가는 정조의 사람 씀씀이와 현명함, 홍국영이라고 하는 책사의 두뇌싸움이 눈에 띈다.
사람들이 드라마를 보면서 재미를 느끼는 이유는 캐릭터에 동화가 되기 떄문이기도 한데, '태왕사신기' 담덕 주위에는 책사도 눈에 띄지 않고, 시청자가 머리를 쓸 만한 사건도 없다.
오로지 애매모호한 화천회의 방해공작과 담덕의 원맨쇼만 두드러질 뿐이다.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등 김종학 피디가 연출한 작품은 빼놓지 않고 봐온 나로서는 태왕사신기의 지루함이 견디기 힘들다. 기대를 너무 많이 했기 떄문일까. 비주얼에 너무 신경을 쓰다 보니 탄탄한 극적 긴장감을 놓치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요즘이다.
이런 전개라면 '역사왜곡'논란과 별개로 '극 자체의 흡입력'의 저하로 욘사마 팬 이외의 일본 내 시장확대는 힘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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