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그니의 일본표류기


1.
이제 퇴근길에 저녁메뉴는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나는 전철안에서 평소 즐겨보던 주간지 대신에
일부는 쿠폰으로 잘려나간 너덜너덜한 전단지를 훑는다.
이거 아줌마 행동인가?
아마 아주머니들도 전철에서는 이렇게 전단지를 독서하듯 읽지는 않을 것이다.

내 앞에 앉은 흰머리의 중년남자가 힐끗 나를 한번 훑어보더니
이내 잠에 빠진다.
그가 나를 훑었던 이유는 아마도 내가 든 전단지가
자기가 사는 곳에 있는 수퍼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나랑 같은 역에서 내렸다.

2.
설이다.
혼자 보내는데 익숙하긴 하지만
그래도 명절인데, 스스로 자축이라도 해야겠다.
아마도 서울에서 와이프는 전을 가득 부치고 있을거고
딸은 자기보다 어린 조카와 정신없이 놀고 있을 것이다.

수퍼에 가서 평소에는 눈길도 주지 않던 '사시미'를 산다.
사시미를 사다보니 웬지 가공식품보다 직접 구워먹던 고등어 생각이 났다.

'간단해. 그냥 튀겨!'
와이프가 떠나기 전날 나는 부지런히 요리를 강습받았지만
그냥 듣는 거랑 직접 해먹는거랑은 천지차이.

라면 하나는 잘 끓인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_-;;
반찬이 되는 소재를 직접 만지는 것을 별로 해본적이 없는 나는
아내가 다녀간 이후로 조금 변했다.
직접 해봐도 그리 크게 어렵지 않다는 생각.

결국 고등어 두마리를 골랐다.

3.
집에 오자마자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고등어를 튀긴다.
이것도 그동안 곁눈질 한 것이 있어서 고등어 색깔이 어느정도가 적당한지 대충 눈짐작을 할 수 있다.

다 구워지고 나니
그동안 인스턴트 카레, 낫또, 라면, 시판용 튀김요리와 함께 한 저녁식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근사한 저녁이 되었다.

'뭐야 고등어 구이는 김치찌개보다 쉽잖아!!'

양배추를 썬다.
콩콩콩콩.
양배추를 잘게 썰 수 있는 슬라이스 칼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부들이 살림에 욕심을 내는 이유를 알겠다.

설.
주위에는 아무도 없지만 고소한 고등어구이를 맛보면서 식사를 끝내고
집에 남아있던 맥주 캔을 꺼내서 사시미 와 함께 축배를 든다.

카페나 블로그에 글을 올릴까 하다가 그냥 자기로 한다.

4.
아침
치바에서 도쿄로 들어가는 길
에도가와를 건너는 전철 안에서

반짝이는 물비늘 위로
봄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낀다.

한달후면 다가올 벚꽃과 유쾌한 술자리.
그리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생각한다.

아이와 아내와 함께 생활할 초여름을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나는 지금 가장 추운 겨울을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나고 있는 것이다.

신고



Posted by 당그니
일본생활 이모저모 l 2008.02.07 11:57
TAG ,

블로그 이미지 당그니의 일본이야기by 당그니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457)
알림 및 공지 (19)
인터뷰 및 기사 (12)
만화 일본표류기 (45)
일본! 이것이 다르다! (153)
일본생활 이모저모 (160)
랭킹으로 보는 일본 (28)
일본은 최근 이슈는? (291)
Photo Japan (61)
저패니메이션, 길을 묻다 (34)
블로그속 블로그이야기 (57)
만물상 (47)
당그니 이바구 (249)
인생의 갈림길에서 (141)
당그니 일본어 교실 (87)
당그니 갤러리 (56)
공감가는 이야기 (14)
고물상 (0)

달력

«   2017/09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