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그니의 일본표류기


1. 부탄은 초딩도 영어를 잘한다.

요즘 영어 때문에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것 같다.
인수위가 쏟아놓는 '영어몰입교육'부터 'TESOL' 등
12년을 배우고서도 영어를 못하는 현실을 타개하고자 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그 전에 왜 이렇게 한국사회는 영어에만 매달려야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어제 저녁 니혼테레비 뉴스 프로그램 'ZERO'에서 2006년 월드컵 이후 은퇴를 선언하고 세계를 여행중인 일본의 축구스타 '나카타 선수'를 동행취재한 내용을 내보냈다.
'나카타'는 현재 '부탄'에 있는데, 현지의 여러 어린이들과 현지의 풍습을 직접 체험하면서무언가 새로운 것을 꿈꾸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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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행취재 르포에서 두가지를 알 수가 있었는데,

하나는 부탄은 전통적인 문화를 지켜나가면서 GDP를 올리기 보다는 GNH(국민총행복)를 더 올리는데 주력하고 있다는 점.
또 하나는 어린이들도 영어를 잘 한다는 점이다. 학교에서 '영어'를 공식적으로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유가 세계화를 위해서라기보다 여러부족으로 쪼개져있어서 영어라는 공용어가 없이는 의사소통이 안되기 때문이다.

  최빈국이라고도 볼 수 있는 부탄에서 '영어'를 배우는 이유가 2만달러, 3만달러를 향한 세계화, 국제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고작 '의사소통'이 안되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즉, 영어를 온 국민이 잘 한다고 해서 잘 사는 것도 아니며, 또 그렇게 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연 한국에서 하루도 끊이지 않고 이야기되는 영어 이야기가 과연 우리의 경쟁력에 도움이 될까?

같은 동양권으로 인접나라인 일본은 어떨까.
일본도 한국처럼 이렇게 난리법썩인 것일까.
영어가 대체 뭐길래 우리는 이렇게 매달리고 있는 것일까.

2. 일본이 선진국이 된 이유?

일본이 선진국이 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영어'를 공용화 했기 때문이라거나, 국민 모두가 '영어'를 잘해서는 절대 아님을 다들 아실 것이다.

메이지 유신 당시 빠른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서 일본정부 내에서는 모든 것을 서양것으로 바꿔야한다는 것은 최고의 선이었다.
'문명개화'란 곧 '서양화'였다.
이때 '영어'를 공용화하자는 논의도 나왔으나, 영어를 공용화하면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이 분명 갈릴 수 있다는 점에서, 또한 근대화의 저변을 확대시키는데 장애가 될 거라는 우려때문에 채택이 되지 않았다.
 영어는 그저 도구일뿐 그 내용을 얼마나 빠르게 습득하고 전파시키느냐가 근대화 성공의 열쇠라고 당시 지도부는 판단한 것이다.

 하여 일본은 정부 기관내에 '번역국'을 설치하고 서양근대기술문명의 모든 성과를 일일이 번역해서 빠르게 보급하는 길을 택했다.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일으킨 1868년 이후 30년만에 열강의 지위로 오른 것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열성적으로 서양문물을 습득하려고 노력했는지를 알 수 있다.

 물론 일본이 열강, 선진국 대열에 들어간 것은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예를 들면 일본 내에서 내란이 일어나지 않고 일본이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던 30년간  유럽은 유럽대로 전쟁에 빠져있었고 일본의 개항을 이끈 미국도 남북전쟁에 휩싸이는 등 운도 따라줬음을 일본학자들도 지적하고 있다.)  일본이 서구열강에게 틈을 보이지 않고 빠르게 서양지식을 흡수, 내재화시킨 능력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2차세계대전 이후 패전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특수 친미, 경제중심의 정책노선을 중심으로  고속경제성장가도를 달린 일본은 '영어'보다는 '물건을 제대로 만드는 것'에 힘을 쏟았다. 사실 한국도 7-80년대 달성한 고속경제 성장이 영어 때문이라기 보다는 국민들이 근면하게 일해서 이룩한 것 아닌가.

 
3. 국가의 품격이 베스트 셀러가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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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부터 일본을 강타한 유행어 중에서 눈에 띄는 단어가 '품격'이다.
品格(ひんかく)
지금도 일본의 대형서점에 가면 '여성의 품격' 등 '품격'이 들어간 책들이 베스트셀러 목록의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품격'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된 데에는 2006년 '국가의 품격'이라는 책이 200만부가 넘는 초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부터다.

 이 책을 직접 읽어봤으나 내용은 그렇게 썩 재미있거나 저자가 수학교수임에도 불구하고 논리적인 글은 아니다. 오히려 지극히 우익적이고 배타적인 내용으로 가득해서 이런 책이 왜 베스트셀러가 되었나 하는 의심이 들 정도의 책이긴 하다. (이 책에 대한 논의는 추후에 별도의 포스팅으로...)

 그러나 딱 한가지 저자의 의견에 공감한 것이 있다.
 해외체류 경험이 있는 저자(현 오차노미즈대학 수학과교수)는 '영어'를 가르치기 보다 자국어, 자국문화를 먼저 확실히 가르치라는 것이다.
 자신이 영국의 석학을 만났을때 처음 나눈 대화는 '영어'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일본문화에 대한 것이었음을 상기시키면서 영어를 잘 한다하더라도 정작 외국인이 관심을 갖고 있는 '자국문화'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없이는 글로벌시대의 인재로 클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일본에서는 현재 '국수주의적'이라고까지 이야기 할 수 있을 정도로 '일본어', '품격' 등 자국문화, 자국어에 대한 고민이 책으로 나와서 홍수를 이루고 있다.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를 일방적으로 밀어부친 '고이즈미' 정권의 후유증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한국과 똑같이 '구조조정'이 이루어지고 '정부 기관의 민영화'가 속속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일본이지만, 한국만큼 전국민이 영어를 배우자는 열풍에 휩싸이지 않는다.

 '국가의 품격'이 베스트셀러가 된 데에는 대책없이 밀어부치는 신자유주의, 성과주의, 미국중심주의에 대한 일반대중들의 무의식적인 반발이 크게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4. 일본은 외무부장관도 영어를 못한다?

 가끔 기사에서 이명박 당선인의 영어솜씨하며 인수위원장의 '어륀지' 발언이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나 일본의 수뇌부는 영어에 관해서는 그리 높은 점수를 줄 수가 없다.

 현 일본총리인 후쿠다 야스오씨는 1962년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마루젠석유(현 코스모 석유)지점에서 근무한 적이 있지만 영어를 잘 못해서 기자들이 영어실력이 의심간다는 기사를 쓰기도 했고, 총리 자리를 두고 후쿠다와 경쟁을 벌였던 '아소 다로'는 외무성 대신(외무부 장관)을 지냈지만 '망가'를 좋아할 지언정 영어는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억2천의 인구를 대표하는 외무성 대신으로 여러나라 정상과 이야기를 나눴다. 왜? 통역이 있으니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외무성은 일본의 입장과 국익을 위해서 외국 대표와 협상하고 조정하는 역할이지 빠다발음을 굴리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는 어떨까.
  대체적으로 영어가 중요하다는 인식은 퍼져가고 있지만,
  2년전에 '문부과학성'(교육부)에서 초등학교때부터 영어를 제대로 가르쳐야된다 라는 안이 나왔다가 철퇴를 맞았고, 취업빙하기가 끝났다는 요즘에 기업들이 대졸자들을 모셔가는 형편에서 주요 기준은 '영어'가 아니라 학교와 실력 등이다. (물론 토익점수가 높으면 더 높은 평가를 받지만 그것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이야기)
 
 얼마전 파산한 영어체인 '노바'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에서 영어학원을 다니는 숫자는 109만명 정도로 1억 2천만의 인구로 따져보면 1 퍼센트 정도이다. 승진에서도 영어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다.

 일본에서 영어를 잘 하면 좋지만 못해도 그리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닌 것이다.
 오히려 제대로 일을 할 수 있고, 물건을 제대로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있느냐 하는 것이 이곳의 주요 키포인트다.

 일본 산업을 조금 들춰보면 재미있는 점이 시장의 변화에 따라서 끊임없이 대응을 해 나간다는 것이다.
 닌텐도 DS가 소니의 플레스테이션을 압도적인 차로 누르고 있는 것은 정해진 시장에만 목을 맨 것이 아니라, 게임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들도 할 수 있도록 새로운 시장을 창출했다는 것이다. 또한 장난감 업계에서도 아이들이 인터넷 등 학원 공부로 불황이 계속되자 어른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장난감을 개발해서 시장을 새롭게 개척하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일본인들은 '영어'보다는 뭔가 새로운 '물건'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개량해나가면서 시장을 잠식해들어간다. 영어는 그저 필요한 사람이 하면 된다는 것이고, 실제로 필요한 사람들만 하고 있을 뿐이다.  

 일본인들처럼 해외, 특히 미국과 유럽에 관심이 많은 민족도 없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그 나라말을 배워야한다고 떠들기 보다 필요한 사람이 그 나라에 가서 필요한 정보를 얻어와서 일반대중에게 전파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이다. 현 만엔짜리 주인공인 '후쿠자와 유키치'는 '이와쿠라 사절단'의 일원으로 미국과 유럽을 둘러봤지만 현지인들과 열심히 교류하고 자신을 알리기 보다는 서양문물의 하나부터 열까지 모조리 메모를 해와서 '서양사정'이라는 책을 펴내, 국민들에게 '근대화'의 필요성을 널리 확산시켰다.
 
  서브프라임 문제로 직격탄을 맞고 있는 일본으로서는 미국 대선의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는데 힐러리와 오바마의 선거결과에 시시각각 촉각을 기울이면서 현지에 파견된 특파원으로 하여금 좀 더 생생한 현장의 분위기, 미국 언론인 반응을 일일이 들어보면서 현장감을 극대화 시킨다.    

 일본 내에서는 이렇게 해외에 나가지 않아도 대신 나가서 고생하는 사람들 덕택에서 해외여행을 가지고 않고서도 지구촌 곳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정도다.


5. 한국사회에 품격이란 있는 것인가.

영어를 잘 하면 물론 좋다.
그러나 잘하면 좋은 것이지, 모두가 잘 할 필요가 있을까.
한때는 초일류기업이 어쩌고 저쩌고 맨날 광고에서 떠들어대더니, 이제는 온국민이 영어를...

영어 몰입교육의 성과도 의심스러운 것이 '외국어'라는 것은 아무리 해도 그 나라 특유의 표현이 뒤섞여서 나오기 마련이다.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프리토킹을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영어든 일본어든 한국사람끼리 대화를 외국어로 자주 하게 되면 그 만큼 broken english나 어색한 한국식 일본어를 습득하기가 쉽다.
영어로 무조건 국민들을 양떼 몰아대듯 밀어댄다고 될 문제가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한번 배운 외국어는 그것을 적절하게 쓰이기위해서 끊임없이 유지보수를 해야한다는 점이다.

 영어산업에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이렇게까지 영어에 온국민이 엉덩이를 들썩들썩해야하는 것일까. 그냥 영어를 하고 싶은 사람은 적당히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정도의 사회는 되기 힘든 것인가.

 무엇보다, 한국에는 '영어' 라는 토픽이 일년 내내 주요 매스미디어의 단골 기사를 오르락 내리락할 정도로 '품격'도 '문화'의 깊이도 없다는 말인가.


관련글: 낙동강 오리알된 일본내 영어강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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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당그니
일본! 이것이 다르다! l 2008.02.08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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