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그니의 일본표류기


1.
퇴근후 집에 와서 컴퓨터를 켜고 이것저것 하려고 하다 보면
어느새 아이가 잘 시간이 된다.

그러면 아이와 나는 매일 짧은 실랑이를 벌이게 된다.

'아빠, 책 두권 읽어줘!'
'에이, 오늘은 하나만 하자'

아이는 자기전에 꼭 책을 읽어줘야 잠자리에 들기 시작했고,
언제서부터인가 그것이 하나의 룰이 되어버렸다.

유치원생인 딸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재우는 것은 내 몫이라...
매일 밤 동화책 읽기를 빨리 해치우려는 나와
두권 정도는 읽어야 기분이 풀리는 아이와 줄다리기가 시작된다.

아이가 일찍 잠들어주면 그만큼 개인적인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에
나는 잠시 짱구를 굴린다.

1. 두권을 읽어주는 대신 혼자 자라고 할 것인가.

2. 한권을 읽어주고 같이 누워서 자는 시늉을 할 것인가.


아이를 재운다는 것은 단순히 책만 읽어주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아이를 걱정없이 잠들게 하는 것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 두가지 중 어떤 방법을 구사할 것인가 늘 내게 퇴근후 숙제이기도 했다.

이 두가지 다 각각 위험이 따른다

첫번째 두권을 읽어주고 혼자 자라고 하는 경우, 두권을 다 읽어준 다음에도 혼자 자기 싫다고 떼를 쓰면 속수무책이라는 것.

두번째, 한권만 읽어주고 같이 누워서 자는 시늉을 하다보면, 피곤해서 나도 모르게 같이 잠들어버린다는 것



결국 '한권'을 택하고 몸으로 때우기로 한다.

"알았어. 오늘은 아빠가 재워줄테니, 한권으로 하자."


사실, 마음 같아서는 매일 10권이라도 읽어주면 좋겠지만, 생활에 쫒기다 보면 그게 안된다.

물론,
책을 간단하게 읽어준 후 딸 옆에서 아이가 잠들기만을 기다리며 호시탐탐 밖으로 나갈 기회를 엿보는 나는, 여지없이 꿈나라행 급행열차에 동승해버린 적도 적지 않다.


2
아내가 일본으로 국제이사짐을 꾸릴 때
다른 살림은 모두 줄였지만, 유일하게 늘린 것은 아이 동화책이었다.

'꼭 그렇게 많이 사야되겠어? '
내가 무슨 동화책을 그리 많이 사냐고 했지만, 아내는 막무가내였다.

'무슨 소리야. 일본에서 사려면 이게 얼마나 비싼데...아무튼 이 시리즈는 다 사가야 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내와 딸이 다시 일본으로 건너온 지 3개월.

딸아이는 매일 매일 새롭게 읽을 책을 고르느라 여념이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되도록 책을 많이 가지고 오려고 했던 아내의 생각에 반대한 내 생각이 짧았다고 느낀다.

아이는 다시 이곳 생활에 적응해가면서 일본말은 어디서나 접하고 늘려가는 만면, 한국어는 부모가 쓰는 말 정도이기 때문에 부족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을 비타민제처럼 보충해주는 것이 '동화책'인 것이다.

  일본어로 된 동화책도 읽어주긴 하지만 역시 감정표현이나 다양한 목소리를 내면서 동화속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연기를 하는 것은 한국어 쪽이 훨씬 낫다.

이쯤에서 아이에게 부모가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이 왜 중요한지 그동안 느낀대로 적어보면


1. 동화책에 있는 말은 대부분 곱고 아름다운 우리말이므로, 아이에게 고운말을 자연스럽게 심어줄 수 있다. 자연스레 훌륭한 모국어 수업이 된다.

2. 동화책을 읽어주는 동안 아이에게 부모는 아주 중요한 연극배우가 된다.
   부모는 나레이터도 하지만, 동화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캐릭터를 연기해야 된다.

3. 아이는 부모의 목소리를 듣고 연기를 보면서 세상을 보고 느끼고, 상상하므로,
  상상력을 키워주는 데 도움을 주고, 평소에도 같이 이야기 할 거리가 생긴다.

4. 부모 또한 평소에 보지 않는 동화를 읽으면서 아이들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생긴다. 혹은 자신의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5. 요즘 동화책은 과학,철학,수학 등 다양한 내용이 들어간 것이 많아서 아이에게 부모가 자연스럽게 사물을 논리적인 훈련을 시켜주는 교실이 된다.



대충 이 정도가 되겠다.


3.
부모가 동화책을 통해 연기를 잘 하게 되면 될 수록,
재미있게 읽어주면 줄수록
아이는 더 많은 동화책을 읽고 싶어한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아이와 동화읽기를 하다보면,
아이는
굳이 '독서'를 하라고 부모가 강요를 하지 않아도
언제부터인가 '책'속에 '지혜'가 있음을,
글자가 단순히 '활자'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빚어낸 재미난 이야기의 '결정체'임을
자연스레 느끼게 될 것이다.

아직 한글을 떠듬떠듬 읽는 지라, 자기가 읽으면 속도가 너무 느리고
단어뜻을 모르는 것 많아서 '읽어달라'고 떼를 쓰지만,
한글을 자유자재로 읽는 날이 오면 아이는 혼자서 책과 노는 방법을 깨치게 될 것이다.

물고기를 잡기 보다 물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은 나는,
퇴근후 짧은 시간(보통 9시 정도 되므로....)을 쪼개서
아이와 책을 읽고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어쩌면 '새로운 우주'를 키우는 일이다.

그래서
가끔 피곤하지만
아이와 함께 '동화책 읽기'를 즐기려고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편으로
아이가 동화책을 읽어주는 부모의 목소리를 이렇게 똘망똘망한 눈으로 그리고 매우 진지하게 들어주는 것도 어렸을 때가 아니면 또 언제일까 싶기도 하다.

스무살이 한번 가버리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듯이
아이는 늘 성큼성큼 자라는 나무 같기에
부모의 어설픈 연기에도 꺄르르 웃는 아이의 웃음도 찰나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나중에 아이가 커서,책을 혼자 읽겠다고 부모를 귀찮아하기 전까지
부지런히 아이에게 책을 읽어줘야겠다.

하여,
아이의 유년시절에 새겨둔 세상에 관한 '호기심'은
더이상 부모를 필요로 하지 않는 날들이 찾아와도 영원히 계속 되기를....

동화책을 읽고 난 어느 저녁,
생각해본다.




히라가나 부터 기초문법, 현지회화까지 
->
당그니의 좌충우돌 일본어  



Posted by 당그니
인생의 갈림길에서/아이,나의 흑백필름 l 2008/09/10 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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