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그니의 일본표류기



"오늘이 28일째야"

내가 이렇게 밤에 같이 걷기시작한 것이 며칠째냐고 물으니 아내가 대답했다.

아내와 나는 매일 밤 10시부터 12시까지 2시간 동안 걷는다. 물론 그냥 유유자적한 산보는 아니다.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서 유산소운동을 하는 것이 진짜 목적이다. 보통 2시간을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 거리로는 보통 10Km, 소비되는 칼로리는 보폭을 5km/시속으로 했을 때 887Kcal 정도 소비된다.

뭐 이런 수치를 일부러 외우려고 했던 것은 아니고 일본 사이트 중에 자기가 걸어다닌 곳을 마우스로 클릭해놓으면 소요된 거리 및 소비 칼로리 등을 알려주기에 알 수 있었다. http://www.mapion.co.jp/route/

아무튼, 거의 한달 정도 이렇게 걷고 있는 셈인데 아내와 같이 걷다보면 좋은 점이 몇가지 있다. 우선 바쁜 일상속에서 제대로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2시간동안 주고 받을 수가 있고, 딸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하는 관점부터 교육철학, 생활비 이야기, 각자의 과거 이야기 등을 서로 나눌 수 있고, 무엇보다 낮에는 볼 수 없는 도쿄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겠다.

밤에 운동을 하면서 느끼는 것을 몇가지 써본다면...

도쿄에는 보통 어느 동네를 가더라도 운동을 위한 산책코스가 잘 발달이 되어 있다. 내가 처음 도쿄에 올라와 살았던 하나코가네이라는 곳은 걸어서 5분거리에 '타마자전거도로'가 있었고, 이 자전거 도로는 조금 걷다보면, 울창한 숲과 함께 옆에 밭이 펼쳐져 있기도 했다.
두번째 살았던 도쿄 아다치구는 구에서 관리하는 수로가 길게 이어져 있어서 역시 산책하기에 적격이었다.
세번째 살았던 치바 이치가와시 미나미교토구는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전철이 다니는 고가 옆에 자전거 도로가 길게 이어져 있서 조깅하거나 산책하는 사람이 많았다. 다만 나무가 별로 없어서 황량한 느낌이 들긴 했다.
그리고, 지금 사는 곳은 칸다강이 길게 이어져 있어 강 옆에 산책코스가 잘 발달되어 있어 차소리에 방해를 받지않고 걷기에 그만이다.

밤에 운동을 하다보면, 역시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은 우리와 같은 운동족. 부부가 나란히 지나치기도 하고, 조깅을 하는 사람도 있다. 얼마전 아내는 게이커플이 지나갔다며 내게 알려줬고, 오늘은 다이어트 한다고 큰 액션을 보이며 깔깔깔 웃는 한국 여자 두명을 보았다.

어쨌거나 밤에 운동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흡사 지리산 같은 곳을 등반할 때 마주치는 등산객 같은 느낌으로 묘한 동료의식까지 들 정도다. 아무래도 아무도 없는 길을 걷는 것보다는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는 게 반갑기도 한 것도 있을 것이다.

두번째 산책코스를 걷지 않고 대로변을 따로 걷다보면 역시 일본은 라면대국이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어디를 가도 라면집은 정말 많다. 한국에서 삼겹살집이나 분식집을 쉽게 볼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라면집을 지나다보면 약간 비린내나는 돼지뼈 녹인 냄새도 풀풀 나는데 때때로 역겹다. 가끔 안을 들여다보면 밤 12시에도 여전히 영업을 하는 곳이 많다. 몇몇은 늦은 저녁을 해결한다.

언젠가 와세다대학 근처를 지나다 11시 반이 넘었는데도 줄을 길게 선 라면집을 본 적이 있다. 나는 그들이 술을 먹고 나서 속풀이를 하려고 라면을 먹으려고 하는 것인지, 그냥 식사 대신에 라면을 먹으려고 하는 것인지 모른다. 다만 속풀이를 하든 끼니를 때우려고 하든 어쨌거나 줄을 서서라도 맛있는 라면을 먹고 말겠다는 일념하에 기다림도 마다않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밤 11시 반인데도 말이다.

아무튼 도심이고 전철역에 가까워질수록 라면집은 10-15미터 간격에 하나씩 있는 것 같다.

세번째는 내가 사는 역 근처이긴 하지만, 지나가는 남자들에게 '아가씨를 사라'고 호객행위를 하는 중국인 아줌마들을 매일 마주치게 된다. 우리가 늘 정해진 시간에 다니므로 그들도 분명 우리 얼굴을 기억할지도 모른다. 아무튼 매일 출근하듯이 우리가 그들 곁을 지나치게 되면서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사이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뭐 그렇다고 해서 무슨 이야기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 

네번째는 밤 10시에 12시까지(때때로 1시)는 술에 어느정도 취하는 시점인데 길가 토를 하거나 쓰러져 자는 사람은 별로 보지 못했다.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특히 대학가 근처 술집에서는 종종 보지만 대체적으로는 어느정도 취하면 들어가기 마련이라 운동을 하는데 크게 지장을 주는 사람들은 없었다.   

가게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람들도 밤 12시를 기점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택시비가 비싸니까 마지막 전철은 무조건 타려고 자리를 뜨는 것이다.

술먹고 헤롱거리는 사람보다 오히려 더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노숙자들이다. 일본에서 노숙자들은 책을 읽기도 하고 그 나름 문화생활을 즐기는데 밤의 산책로를 지나다보면 종종 벤치에서 자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다섯번째는 밤에만 이루어지는 수많은 도로공사들. 낮에는 교통체증 때문에 할 수 없는 다양한 공사가 밤에는 벌어진다.

아무튼 곧 저녁 운동을 한지 한달이 된다.

밤에 운동하면 낮보다 훨씬 선선하고 시간에 쫒기지 않아 좋다. 물론 하루에 2시간을 소비하는 셈이니 하루가 24시간임을 생각하면 거의 1/11을 운동으로 소비하는 것이 된다. 그 동안은 책을 쓰거나 다른 블로그 글을 읽거나, 내 블로그에 글을 쓰거나 등 해왔던 다른 일을 못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나 혼자 걷는 것이 아니라 아내와 함께 하는 것이므로 매일 두시간동안의 데이트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썩 쓸데없는 시간소비는 아니다.
 
무엇보다 발로 다니면서 일본의 밤거리 모습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아닐까 생각한다. 단, 초등학교 1학년 딸아이가 우리가 걷는 시간동안은 깨어나지 않기를 기원하면서...

그렇게 어제도 아내와 거리를 걸었다.(뱃살도 좀 빠지길 바라면서...실은 이게 가장 큰 목적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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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당그니
일본! 이것이 다르다! l 2009.08.17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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