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그니의 일본표류기



지난 2005년 가와노 다츠미 씨와 이에이리 게이코 씨가 명성황후 묘소를 참배하고 사죄를 했을때 한국언론의 집중 플래시를 받았다.

한국언론이 수선을 떨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들이 1885년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 규슈 구마모토현 출신 살해범 후손이었기 때문이었다.


가와노 다츠미 씨

- 이에이리 게이코 씨

규슈에서 의사를 한 가와노 다츠미씨는 구니모토 시게아키의 손자였고, 이이에리 게이코씨는 84세에 자신이 직접 범행에 가담했다고 솔직하게 밝힌 이에이리 가키치의 손녀였다.

그런데 나는 그때 한가지 의문이 들었다.
누가 어떤 경로로 이들을 한국에까지 사죄를 하러 데리고 왔을까. 신문에는 단순히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이라고만 나와있고, 그 자세한 경위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지난  8월 24일 전국 방송 중 처음으로 TV 아사히에서 명성황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뉴스프로그램인 보도스테이션에서 전격적으로 방영을 했다. (자세한 방영 내용은 이쪽을 참고 http://tokyo-g.tistory.com/135 )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대해 거의 모르는 일본인이 태반인 상황에서 이는 획기적인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지난주말 지인인 사코다 씨를 통해서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 대표 가이 도시오 선생이 코다이라시에서 직접 '명성황후와 구마모토'에 대해 강연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토요일 서둘러 강연 현장을 찾았다. 역사교육이 척박한 일본땅에서 도대체 어떤 경로로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이 만들어졌는지, 그 대표는 과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다.(강연 내용은 아래 링크에)

日서 '명성황후 모임'이 만들어진 까닭? 그들은 왜 사죄차 한국을 찾았나 



강연을 듣고 나니,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 대표인 가이 도시오 선생에게 조그만 돌을 던진 것도 재일동포였고, 그후에 수많은 일본인들을 움직인 것 재일동포였다. 그리고 일본인들이 감추려 했던 역사를 끈질지게 복원하는 한국의 다큐멘터리 감독이 있었다. TV 아사히에서 방영한 프로그램은 일본에서 제작한 것이 아니라 실은 한국의 다큐서울 정수웅 감독이 2005년 만든 것으로, 전국방송을 탄 것은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의 활동에 의해서였다.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이 활기를 띤 것은 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종군위안부 역사교과서 문제가 터지면서부터였다. 그때부터 가이 도시오 대표와 연락을 취하고 있던 재일동포 주영복 선생은 한국이 충청남도의 연락을 취하면서 자민당 계 보수세력이 교과서의 기술 내용을 삭제하라는 압력과 싸우면서 연대를 튼튼히 하게 되었고, 그 이후부터 자연스레 일본에서 모르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꾸준히 알게 된다. 그것을 꾸준히 하게 된 것은 역시 일본의 양심적인 교사들이었다.


- 명성황후 홍릉 참배 기념후 '일한의 과거를 직시하고 더 나은 우호를' 이라고 적힌 내용을 소개 

교사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 대표 가이 도시오 선생은 살해범의 후순 가와노 다츠미 씨와 이에이리 게이코 씨를 설득, 한국으로 향했다. 그냥 가기만 해서는 안된다 사죄와 함께 명성황후의 유품이었던 향낭을 되돌려주는 의식을 수행했다.

110년만의 만남. 
TV 아사히는 이번 다큐멘터리를 방영하면서 114년만의 빙해(氷解)라고 표현했으나, 명성황후 문제는 이제 첫발을 내딘 것이다. 여전히 많은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근대화를 겪으면서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근대이후 역사에 대해 거의 배우지 않는다.

가이 도시오 선생은 강연 끝에 이렇게 말했다.

"작년까지는 중학교 교과서에 명성황후의 사진이 있었고, 상당한 실권을 쥐고 있는...이라는 캡션이 달려 있었습니다. 올해부터 앞으로 2년간 사용할 중학교 교과서에는 그것이 모조리 사라졌습니다.
교과서에 없으면 선생님들이 가르칩니까? 안 가르칩니다. 선생 자신이 명성황후에 대해 잘 모르니까 교과서에 없다면 더더욱 안가르칩니다.앞으로 2년간  명성황후에 대해서는 학교에서는 사라져 버립니다. 안타깝습니다. 이것이 현재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므로 더욱 나 같은 사람이 사람들이 늘어나서 전국의 선생님이나 아이들에게 일본과 한국이 뒤틀린 것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인식을 시켜야 됩니다"
  

그는 자신이 죽을 때까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무지와의 싸움을 계속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 많은 일본인이 자연스럽게 명성황후 묘지를 참배하는 날이 오게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불행했던 한국과 일본의 역사가 일본인들 손에 의해 스스로 깨닫고 풀릴 것인지...


 
지난번에 임진왜란 기록영화를 만들었던 마에다 켄지 감독과 인터뷰를 하면서도, 이번에 가이 도시오 선생을 인터뷰 하면서도 느낀 것인데 역시 일본이 진짜 역사적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또 한편의 당사자인 한국이 적극 나서서 일본의 양심적인 지식인들을 지원해야한다는 것이었다.


- 사진 "명성황후 시해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아소산 비석"

일본이 모른다고 해서 원래 그런놈들이야라고 하면 문제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다. 그렇게 일본인에게 모티브를 제공하면 양심적인 일본인들은 스스로 움직여서 일본 내 자료를 모이고 연구해서 주위를 환기시켜 나가기 때문이다.

(다음은, 그날 강연 내용을 정리한 글입니다. 가이 도시오 대표에게 '명성황후 사건을 알려준 소녀 이야기  등)
日서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이 만들어진 까닭은?

 

* 히라가나 부터 기초문법, 현지회화까지

->당그니의 좌충우돌 일본어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당그니
일본! 이것이 다르다! l 2009.09.15 04:47

블로그 이미지 당그니의 일본이야기by 당그니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457)
알림 및 공지 (19)
인터뷰 및 기사 (12)
만화 일본표류기 (45)
일본! 이것이 다르다! (153)
일본생활 이모저모 (160)
랭킹으로 보는 일본 (28)
일본은 최근 이슈는? (291)
Photo Japan (61)
저패니메이션, 길을 묻다 (34)
블로그속 블로그이야기 (57)
만물상 (47)
당그니 이바구 (249)
인생의 갈림길에서 (141)
당그니 일본어 교실 (87)
당그니 갤러리 (56)
공감가는 이야기 (14)
고물상 (0)

달력

«   2017/09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