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그니의 일본표류기



토요일, 한국어 교실이 끝나고 신년회 겸 해서 한국음식점 겸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곳에 갔다.

1월 30일이었으니, 신년회로서는 아슬아슬하게 세이프한 셈이 된다.

이날 자리를 함께 한 사람들은 내 일본생활 9년지기인 사코다 씨 한국어 교실 수강생들과 그가 서울 유학 시절 알게된 지인과 그 친구였다.

도합 나를 포함해서 8명.
그리 많지 않은 숫자였지만, 인원 구성이 조금 독특했다.

사코다 씨는 한국어교실 강사자 대표고 '안치환'을 제일 좋아하는 가수로 꼽는다.

도쿄 무사시사카이에 사는 S 씨 부부(50대 후반)는 남편이 IT 관련 일을 하고, 부인은 초등학교 선생님이다. 남편은 축구를 좋아해서 한국에 축구시합을 보러가기도 하지만, 한일 고대사에 대해서도 해박하다.

예전에 미국인 잭이 일본에 놀러왔을 때, 현대 일본어는 고대 백제어라고 설명까지 할 정도의 인물이며, 일본 우파보다 천황의 계보와 이름을 다 기억하고 있으면서도 비판할 점을 잊지 않는다.

한국에 모 기업의 주재원으로 14년간 살았다는 D 씨(50대 후반)는 일본에 돌아와서 회사를 조기퇴직한 뒤 자기가 아는 한국어로 한일간의 어떤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현재 통역시험을 준비중이다.

그리고 작년 11월부터 사코다 씨 한국어 교실에 다니기 시작한 KN 씨(여, 40대 후반)는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고 한국의 매력에 빠진 인물인데, 겨울연가를 보고나서 자신의 청춘시절의 아련함이 전해져 오는 것 같다며 공부에 열심인 사람이다. 

한편, 사코다 씨의 지인으로 60이 넘은 K 씨는 한국의 로터리클럽 사람과 알게 되면서 한국에서 몇년간 지냈고, 지금은 자원봉사로 일본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K 씨와 함께온 30대 여성은 한국남자와 결혼한 사람으로 한국에서 대학까지 나온 사람인데 지금은 도쿄에서 남편과 잠시 떨어져 살고 있다. 재미난 점은 그 둘이 한국에서 처음 만난 곳이 청주에서 서울로 가는 새마을호 안에서라는 것이다. 그것도 남편이 군대 휴가 나왔을 때 만났다고 하니, 인연이 따로 있는 가 싶다.

각설하고, 이날 술자리는 한국 음식점 겸 노래방(일본 스나크)인 탓에 한 20-30분 정도 김밥과 닭도리탕으로 배를 채운 뒤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소비했는데, 대부분 사람들이 나보다 한국 노래를 잘 알고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쉽게도 내가 좋아하는 한국 노래라는 게 8-90년대 유행했던 노래고, 2000년 들어와서는 줄곧 일본에서 살았기 때문에 노래 가사를 들으면 어떤 노래인지는 알지만 제목은 도무지 기억못한 채 10년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나랑 비슷하게 일본에 온 사람들의 기억은 대부분 일본에 오기전까지만, 한국에 대한 기억이 멈춰져 있다. 물론 나는 2006년부터 2007년 사이 1년간 한국에 들어가서 산 적이 있지만, 역시 20대 후반부터 30대 중반에 이르기까디 대부분의 대중문화는 일본에서 듣고 보게 됐다.

그런데 토요일에 모인 사람들은 한국에 오래 있었던 사람, 한국 드라마나 노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런지 훨씬 더 많은 노래를 알았다. 그들이 고르는 노래도 한국에 잠깐 머무르면서 노래를 익힌 일본사람들이 흔히 부르는 노래(조용필이나) 말고 그 폭이 최신 유행가까지 더 넓었다.

그러고 보면 노래는 확실히 문화다. 그들이 그렇게 한국 노래를 잘 알고 있는 것은 그들이 한국에 살면서 그런 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한국 드라마에 빠져 있는 일본주부들도 몸은 일본에 있지만 정서는 한국에 있는 셈이다. 나도 90년대말 일본에 유학을 준비하면서 들었던 일본노래를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예전에 한국노래를 잘 모르는 일본사람들 틈에서 한국노래를 부를 때와 지난 토요일은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토요일에 모인 사람이 나 말고 모두 일본인이었지만 모두 한국노래를 2-3시간 동안 연이어 불렀고, 그때 내가 느낀 것은 일본에 있으면서도 순간, 고향에 돌아온 편안함이었다.

나훈아를 부르는 K씨의 노래를 듣고 갑자기 아버지 생각도 나기도 했고, 대학시절, 서초동의 회사생활 시절 동료들과 노래방에 가서 목놓아 노래를 부르던 기억도 났다.

외국생활이라는 게 익숙해지면 아무것도 아닌것이긴 하지만, 때때로 아주 사소한 것에서 조그만 감동이 일기도 한다.

더 역설적인 것은 내가 일본노래를 부를 때는 '아 노래를 부르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는 반면, 한국노래를 부를 때는 '인생을 부르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노래는 정서와 추억을 담는다.




* 히라가나 부터 기초문법, 현지회화까지

->당그니의 좌충우돌 일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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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당그니
일본! 이것이 다르다! l 2010/02/01 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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