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그니의 일본표류기





프리셀라가 어제 아침 본국 미국이 아닌,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곳이 그녀의 일터니까. 프리셀라는 여자고 흑인이다. 필라델피아 출신으로 한국으로 오기전에는 도서관에서 일했다. 그때 알고 지냈던 일본인 친구가 있지만 연락 안한지 오래돼 이번 도쿄행에서 만날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녀는 지난 금요일에 우리집에 왔다. 우리집에 미국인이 묵고 간 것은 지난해 이맘때 온 시애틀 출신의 '잭' 말고 두번째다.

프리셀라는 사실 지난 3월 내가 한국에 잠깐 들어갔을 때 동생이 하는 영어 카페에서 얼굴을 본 적이 있다. 그녀는 12시간을 영어로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의 강사다. 동생은 나를 갑자기 부르더니 프리셀라를 소개시켜줬다. 한 2분 떠들었나? 동생은 내게 농담삼아 이렇게 핀잔을 준다.

"...말을 해야지, 왜 손만 빙빙 돌리냐!"

갑자기 만난 원어민 앞에서 영어가 잘 될리가 있나. 그래도 지난해 잭이 다녀간 뒤 익힌 영어로 이번에 프리셀라가 나리타공항에서 우리집까지 오는 방법에 대해서는 알기 쉽게 설명해줄 수 있었다.

재미난 것은 프리셀라가 가지고 온 가이드북이 실은, 잭한테서 받은 것이라는 점. 잭이 우리집에 대해 미리 여러가지 설명과 나와의 추억에 대해 이야기를 해준 모양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이어진다. 프리셀라는 여행기간 동안, 심야에 롯폰기 클럽에 가서 밤을 새고 오기도 하고 오사카와 교토까지 심야고속버스를 이용해 무박 이틀로 다녀오기도 했다. 온천이나 유적 보다는 도시를 즐기는 아직은 젊은 처자다. 

프리셀라가 일본에 온 것은 여름 휴가 때문이지만 그녀는 세계 여러곳을 다녔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교환학생으로 있기도 했고, 중국,홍콩,태국,싱가폴 등 아시아도 많이 다녔다. 그녀는 미국 시민권자지만 어머니는 얼마전 지진이 난 아이티 출신이다. 그녀를 통해 아이티의 지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이디 지진은 보다 현실감을 띄었다.

그녀는 교토를 다녀와서 이런 말을 했다.

"버스에서 잠깐 외국인 관광객을 만났는데 둘다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 부산에서 일하는 사람은 캐나다인, 서울에서 일하는 사람은 미국인. 이런 황당할 때가."

그러고 보니, 본국에서 일본으로 곧장 날아오기 보다 한국에서 일하다가 일본으로 놀러오는 영어권 외국인도 꽤 되지 않을까.

프리셀라와 여러가지 이야기를 더 해보고 싶었지만, 그 친구가 술을 못먹고 요즘 내 생활이 편하게 영어로 이야기할 상황이 아니라 되도록 혼자서 잘 놀 수 있도록 어드바이스하는데 그쳤다. 대신 아내가 내내 고생을 했다. 아침도 챙겨주고, 내가 출근한 동안 프리셀라랑 떠들어야 했으니.

신기한 것은 영어로 이야기하다 보면 버벅거리고 잘 못 알아듣고 헛소리를 해대기도 하지만, 두려움이나 낯설음은 더 없어진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이야기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역시 언어는 체계적으로 배우고 꾸준히 대화를 나누면서 잘 닦아놓아야한다는 것이다. 물론 생활에 쫓기다 보면 그럴 여력이 없기 때문에 시작했다 말다를 반복하고 있다.

어학은 그러니까 얼마나 알기 쉽고 재미있는 교재를 가지고 있느냐 같은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관심을 오랜시간 유지시켜줄 수 있느냐' 이것이 관건이다. 이 관심도를 계속 유지시켜주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아마 사람들의 외국어는 지금보다 더 향상되지 않을까.

참고로, 프리셀라의 이번 일본 방문의 가장 큰 목적 중 하나는 어머니가 싸주신 고춧가루와 멸치 등 한국반찬을 운반해오는 것이었다. 그녀는 겁도 없게 그걸 손에 들고 타고 내렸다고 한다. 나리타 공항 세관에서조차 그거 뭐냐고 물어봤다고...

"I don't know. It's korea....."

프리셀라가 어제 집을 떠나기 전에 나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서울에서 잭과 같이 보자!"

그랬더니, 그녀 왈

"그래, 우리집 길음동이니, 집으로 초대할게!"

와우!
언제 서울을 갈지 모르지만, 만약 가게 되면 잭과 같이 셋이서 얼굴을 봐야겠다. 그리고 그 둘의 정신없는 대화에 끼어들진 못하더라도 대충 알아들을 수 있는 회화능력을 가졌으면 좋겠다. 과연?


1년전 잭에 관해 썼던 글

- 미국인 잭의 방문



* 히라가나 부터 기초문법, 일본어 한자, 현지회화, 스터디 까지

->당그니의 좌충우돌 일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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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당그니
일본생활 이모저모/일본단상메모 l 2010.09.23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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