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그니의 일본표류기


olive manna


꿈.

10대는 꿈보다 대학입학이 더 중요했기에 꿈을 포기했다.
20대는 꿈 대신 10대 때 저당잡힌 자유를 복수라도하듯 즐기며 살았다. 오로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고 싶었다. 짜릿한 재미가 있었지만, 이대로 꿈에서 멀어지면서 살아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 한 번뿐인 인생에서 이루지 못한 꿈은 있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열차를 갈아타기로 했다.

20대 후반에 열차를 갈아타고 신나게 달려봤다. 열차를 타고 달리다 보니 30대 초반부터 내가 탄 열차가 기름이 부족하다고 삐걱삐걱댔다. 열차에는 나뿐만 아니라 어느새 내 인생의 인연들이 동승을 했기 때문이었다. 기름이 부족해지자 열차를 멈추고 기름을 사기 위해 다른 일을 시작했다. 꿈으로 향하는 열차는 섰지만 기름만 풍부하게 구하고 나면 다시 달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기름을 구하기 위해 다시 다른 운송수단으로 갈아타고 가다 보니 창밖의 풍경이 변하고 생각이 변하고...애초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흐릿해졌다. 그러면서, 꿈에 대한 열망도 식어갔다.

내 꿈은 어디서 시작되었더라? 고교 때 화가가 되고 싶었던 게 꿈이었는데 왜 나는 화가가 되고 싶었던 거지? 왜 나는 만화가가 되고 싶었던 거지? 왜 나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었던 거지? 10대, 20대, 30대 중반까지 직종은 변했지만 난 그림이라는 화두를 버리지 못했다.

생각해보니 10대때 처음 설계한 꿈의 근간이 된 '그림을 그리는 삶을 살고 싶다!'는 건, 당시 내가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그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그림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에서 인정을 받게 된다면 별 상관 없었단 말이다. 

20여년이 지난 후 이만치 걸어와서 돌아보니, 꿈이란 무언가가 되는 게 아니라 정말 무엇을 하면서 살고 싶은가였다. 무엇인가 만족할 수 없었을 때 세웠던 꿈은 사실 자기만족을 위한 집착이기도 했던 거 같다. 

꿈이란 집착이라면, 그리고 꼭 그 꿈을 이뤄도 행복해질 거 같다는 열망이 없다면, 꿈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시시하거나 그냥 비현실적인 일이다. 어느새 꿈에 대해서 생각하지않게 됐다. 현실과의 타협이 아니라 꿈이 뭔지 골똘히 생각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한때, 주위사람에게 꿈이라고 말하고 다녔던 것은 실은 그때 부족한 자신을 감추고 덮을 만한 미래에서 빌려다 쓴 차용증이었을 뿐. 그래서 꿈이 없다고 해서 혹은 없어졌다고 해서 크게 아파할 이유도 없다. 그 꿈이라는 것에 진짜 자기가 들어있는 것인지 확답을 내릴 수 없다면 더더욱.

사랑을 찾는 일, 애인을 찾는 일, 연애를 한다 보면 결국 자기자신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게 된다.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는 거니까. 

꿈도 그렇다. 꿈을 꾸기 전에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 건지, 결국 나란 어떤 존재를 알아야 한다. 이 어려운 질문을 진로를 결정해야할 10대가 알 수 있나? 없다? 별 고민없이 막연히 내리는 미래의 대한 자화상은 꿈이 아니라 형벌이고 사명감일뿐이다.   

역설적이게도 누군가의 절실한 꿈은 뒤집어 보면 그 절실함으로 인해 다른 피해자를,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그것을 꿈으로 포장하고 정당화시키고.그런데 꿈 자체의 설계가 잘못되었다면? 모든 사람이 선하지 않듯이 모든 꿈이 좋은 건 아니다. 악몽도 꿈이잖아?

꿈이라는 말에서 당분간의 목표와 바람을 분리하고 나면 알게 된다. 쟁취해야하는 목표는 꿈이 아니라 그냥 목표였다는 거. 그냥 그게 하고 싶었고, 그렇게 되고 싶었을 뿐. 그걸 하고 나거나, 그게 되고 나면 뭐? 아무 것도 없잖아. 그러고 보면 난 20여년은 꿈이라는 말에 시달려왔던 거 같다. 10대때 제대로 된 꿈을 생각해볼 여유가 없었을 때부터.

이제 나는 10대, 아니 내 딸에게도 '꿈을 크게 혹은, 꼭 꿈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꿈은 그렇게 전쟁 치르듯 반드시 무엇인가가 되야만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꿈이 없어도 충분히 행복하다면 꿈을 꼭 가질 필요가 없으니까.

그래서 꿈을 풀어주기로 했다.그렇게 오래 붙잡고 아, 저걸 꼭 해야되는데, 이걸 해야 되는데 이런다고 해서 꿈이 당장 현실이 되는 것이 아니라면. 꿈은 그냥 있으면 좋은 것이고 안되도 되는 것으로, 그냥 하루를 일주일을 한달을 즐겁게 살기로 했다. 

오로지, 자기의 꿈만 바라보고 달려갈수록 주위의 다른이들이 안 보인다는 말이 있다. 꿈은 꼭 쟁취하거나, 이룩하거나, 포기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내버려두고 놔두면 자연스레 자기 곁에 머물러 때때로 찾아와 말을 걸어주며 오늘 날씨도 좋은데 같이 산책이라도 나가지 않을래 하고 속삭이는 바람같은 것이니까. 그렇게 되고 그만, 안되고 그만인 그런 꿈도 있는 거니까. 꿈은 꼭 뜨거운 태양같은 것이 아니라 선선한 가을바람같이 있는듯 없는 듯 불어오는 놈도 있는 거니까.



* 히라가나 부터 기초문법, 일본어 한자, 현지회화, 스터디 까지

->당그니의 좌충우돌 일본어   당그니트위터 @dangun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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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당그니
인생의 갈림길에서/길에서 만난 연인들 l 2011.06.20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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