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그니의 일본표류기



1.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2007년. 여름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난, 선릉에서 시원찮은 작업실을 마련해두고 만화를 몇개월 그리고 나서, 책으로 출간한 뒤 일본으로 다시 가기 전에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그녀는 약사. 갑작스레 남자친구가 일본으로 건너가게 됐다며, 내게 조언을 조금 들었으면 하고 보자고 했다.

선릉 역 근처 치킨집에서 만났다. 시원한 맥주를 들이키고, 6년간의 일본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입국준비를 하는 나에게 일본생활의 이모저모를 물었다.

벌써 4년 전 일이라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거의 기억이 안 난다. 단지 내 두번째 책 '이랏샤이마세 도쿄' 가운데 나온 오타를 꼼꼼하게 체크해서 건네준 메모만 지금도 선명히 기억난다.

2.
그리고, 내가 먼저 2007년 겨울 바다를 다시 건넜고, 그녀도 남편을 따라 곧 일본으로 건너 왔다.

그리고 아주 가끔 일본어 카페 정모나 번개에서 얼굴을 보곤 했다. 나는 종종 그녀가 사적으로 올리곤 했던 블로그를 통해 소식을 접했다. 한국에서 잘 다니던 약사를 그만두고 일본에서 주부로 살아가는 그녀의 일상. 가끔 집 근처 카페 순례를 하고 남편과의 데이트를 즐기기도 하고. 그렇게 4년이 흘렀다.

그런 가운데, 대지진이 일어났다. 오랜만에 달린 내 블로그 댓글로 그녀의 소식을 알 수 있었다. 방사능 오염이 심하다고 알려진 도쿄 가츠시카구에 살던 그녀는 오염이 덜한 도쿄 서쪽으로 이사를 갔다고.

얼마 후 다시 약사로 일하게 됐다는 글을 읽게 됐다.
'아, 일본에서 약사로 일하게 됐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예전에 도쿄에서 만난 친한 목사님도 사모님께서 일본 약사 면허를 따서 약국을 차린 적이 있었으니까.

3.
며칠전 알았지만, 그녀는 일본이 아니라 한국 약국에 취직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한국으로 완전 귀국을 한 겄이었다.

4년의 세월. 일본생활에 적응이 완전히 되었지만 그녀는 자기 일을 하고 싶었고, 원전이 터진 고심 끝에 한국으로 다시 건너갔다고 말했다. 

그리고 서울이 아닌 그녀의 고향으로 갔으므로 이제 도쿄에서도 서울에서도 쉽게 만날 수 없게 되었다. 왠지 아쉽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원전은 그냥 계기였을 뿐 본인이 진짜 하고 싶었던 일을 다시 찾았다는 글을 읽고 잘 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도 도쿄에 있는 남편하고 짧게는 1년, 길게는 2-3년은 떨어져지내야 할 것 같다고 한다.

4.
이번에 후쿠시마 원전이 터지고 많은이들이 도쿄를 떠났다. 그리고, 생업이나 생활터전 문제로 일본에 남는 아빠들도 많이 생겨났다. 졸지에 많은 기러기 가족이 생겨난 것이다.

이는 비단 한국사람들뿐이 아니다. 일본인들도 이번 사태로 자기가 살던 정든 고향을 떠나 낯선 곳으로 이주해서 살고 있는 사람도 무척이나 많다.

원전이 꼭 필요하다고 하는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원전은 잘만 관리하면 좋은 에너지원이 될 수 있다. 원전을 없애려면 전기를 많이 소비하는 도시를 없애야 한다'고. 인간이 몰려사는 거대도시를 없애지 않는한 엄청난 전력수요가 필요하고, 원전은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이다. 즉, 협박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원전이 꼭 필요하다면, 그만큼의 안전성도 담보하라고. 한 번 방사능이 노출되면 수십년 이상을 죽음의 땅으로 만드는 원전의 엄청난 파괴력에 대해서도 대책을 세우라고. 그런 대책도 없다면 그건 애당초 잘 관리할 수 있는 에너지가 아니라고 말이다.

지금도 방사성물질이 계속 나오고 있는 후쿠시마 원전은 단순히 일본만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의 재앙이기도 하니까.



* 히라가나 부터 기초문법, 일본어 한자, 현지회화, 스터디 까지

->당그니의 좌충우돌 일본어   당그니트위터 @dangun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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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당그니
일본생활 이모저모/일본생활정보 l 2011.07.12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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