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그니의 일본표류기



1.
중학교 때, 88년이었나.

그해 여름 과천에서 서울로 들어가는 길목인 남태령에 살았는데, 반지하였던 탓에 폭우로 집이 물에 잠겼다.

그때 새벽에 지상보다 조금 낮은 집 마루로 문턱을 넘어 물이 콸콸 쏟아져 들어왔고, 우리집은 심야에 필요한 옷가지나 생활용품을 들고 가족들과 함께 몸을 우선 피했다.

아직 어렸던 나는 반지하에서 살다가 주인집인 2층에 올라가 드래곤볼을 보면서 지냈는데, 가구가 절반정도 잠겨 속이 새까맣게 탄 부모님은 살림살이 등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 같다.

어제 우연히 인터넷상으로 본 서울 물폭탄. 우면산 토사가 쓸려 내려온 곳과 아파트, 남부터미널. 이 근방은 내가 초,중,고, 심지어 첫 사회인으로 회사를 다니면서 주로 지나다니던 길이라 가장 익숙한 곳 중 하나다. 사당역도 마찬가지. 게다가 예전에 살았던 남태령 지역이 이번에도 물에 잠겨 6명이나 사망했다고 한다.

일본에 있다보니 실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지만 23년전 기억을 떠올려보면 수해 뒷처리하는 데 무던히도 시간이 오래 걸렸던 기억이 난다.

2.
지난 3월 11일 일본에서 발생한 대지진 이후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노출. 여전히 갈길이 멀고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누출된 방사능은 동북지역뿐 아니라 도쿄도 상당부분 오염을 시켰고, 이제는 구체적인 피해로 나타나고 있다. 바람을 타고 확산된 방사성 물질로 후쿠시마뿐 아니라 인근 현의 야채에서도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었으며 차로 유명한 시즈오카에서도 찻잎에서 방사성 세슘이 검출됐다.

뿐만 아니라, 기준치 이상의 세슘이 검출된 후쿠시마산 소가 일본 전국으로 유통되어 일본이 발칵 되집힌 가운데, 세슘에 오염된 소 여물용 지푸라기를 먹고 후쿠시마뿐 아니라 이와테, 아키타, 니이가타 등 곳곳의 식용 쇠고기가 오염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제는 토양오염뿐 아니라, 본격적으로 먹거리에 방사성오염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사실을 일본정부나 일본 미디어가 제대로 보도하지도 않아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신경쓰지 않으면 잘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3.
이번 서울 물폭탄 뉴스를 들으며, 문득 겹쳐지는 것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다.

두 사고의 공통점은 자연재해가 결코 자신들에게는 닥치지 않을 거라는 인간의 오만이 깔려있다는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은 대지진이 일어나기 전부터 쓰나미에 취약하다는 경고를 수차례 묵살했고, 이를 관리감독해야할 정부나 원자력안전보안원 등은 낙하산 인사로 끼리끼리 해먹는 온상으로 자리잡았다.

서울에서 피해가 집중된 강남 우면산 지역도 주민들이 집값하락을 이유로 재해위험지구 지정을 거부하면서 재해대책을 제대로 세우지 않은 것도 피해를 키운 원인 중 하나라고 한다.

게다가 이런 피해가 발생하면 한결같이 담당기관에서는 100년만의 폭우라던가, 상정하지 못했던 자연재해(지진)라는 등 면피성 발언을 쏟아내면서 자신들의 책임은 없다고 강변한다. 뒷북, 은폐. 자연 탓 후쿠시마나 서울 수해나 하나 같이 말하는 것이 똑같다.

오늘부터 일본에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서울의 수해가 얼마인지 잘 감이 안오지만, 인간이 대자연과 더불어 사는 존재임을, 도시속에서 살면서 문명의 이기에 취해 잘 잊고 사는 것 같다.

이번 수해소식을 들으며 인간이 좀 더 낮고 겸손해져야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 히라가나 부터 기초문법, 일본어 한자, 현지회화, 스터디 까지

->당그니의 좌충우돌 일본어   당그니트위터 @dangun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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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당그니
일본생활 이모저모/일본단상메모 l 2011.07.29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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